[영화 후기] 더 원더스 (The Wonders, 2014)
이탈리아 영화를 이끌 신예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이 2014년도에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여받은 작품인 '더 원더스'가 최근에 한국 극장에 개봉해 보고 왔습니다. 이 감독의 가장 최근 작품인 '키메라'도 영화관에서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어 나름의 기대를 안고 영화관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첫인상은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보았던 키메라가 그렇듯, 몽환적인 분위기와 독특한 연출 방식, 그리고 대사가 아닌 은유적인 연기와 연출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의미가 무엇인가 고민해 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고민의 끝에 느껴졌던 메시지는 감독이 문명화로 인해 변모하던 시골의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그들이 유지하고자 했던 순수의 가치를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초반부는 시골이라는 순수의 공간이 문명에 어떻게 침범되어 갔는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명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벌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밤 중의 시골은 타지에서 온 밀렵꾼들의 차량 라이트와 그들이 쏘는 총소리로 인해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허락되지 않은 침범은 단잠을 자고 있던 주인공 젤소미나의 구성원을 오바마 중에 깨워버리죠. 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규제와 돈이라는 현실적인 압박도 젤소미나 가족을 압박합니다. 정부에서 지정한 규정대로 양봉장을 운영하지 않으면 11월에 강제로 사업장을 압수할 것이라는 위협적인 고지도 받습니다. 순수한 어둠의 평화를 깨트리는 빛의 침범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빛의 침범은 무례하면서도, 달콤하게 다가옵니다. 대표적으로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젤소미나 마을에 콘테스트가 예시일 것입니다. 콘테스트 참여 독려를 위해 광고를 촬영하는 와중, MC는 시골 마을에 대해 은근히 차별적인 언사를 내비칩니다. 비록 PD에 의해 정정되어 재촬영을 했습니다만, MC가 도시에서 온 이들이 시골 사람들을 하대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심지어 영화 마지막에 죄를 지은 청소년 교화는 교육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무지한 시골 아버지에겐 세상 물정을 모른다며 모욕하는 도시인의 모습은 실로 역설적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시골 사람들에게 환상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이는 마을에 관광객을 두어 돈을 벌 기회라 여기고, 주인공 젤소미나는 아름다운 MC의 모습에 한눈에 반해 도시의 삶에 동경을 품게 됩니다. 젤소미나와 그녀의 동생이 헛간에 사선으로 내리쬐는 햇빛을 두 손으로 모아 마시는 장면도 이와 같은 동경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젤소미나는 도시의 침공을 받던 시골에서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인물입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양봉 작업, 새벽에도 일어나 양동이를 비워주지 않으면 난장판이 되는 작업 환경, 기분에 좌지우지되어 고함을 지르는 지긋지긋한 아버지 속에서 자라나던 그녀가 티비쇼가 보여주는 모습이 이곳을 탈출할 기회라고 분명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모 허락 없이 콘테스트에 신청서를 내며, 반항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반면 가장인 아버지의 행동은 다른 주민들과는 달랐습니다. 참가비도 없는 콘테스트를 근거 없이 비난하며, 범죄를 저지른 비행 청소년을 딸들이 있는 집에 함부로 들이며, 농사에도 하등 도움되지 않는 낙타를 거금을 들여 사 오기까지 합니다. 가족들을 옥죄여오는 사회의 압박에도 개의치 않고, 그저 자신만의 똥고집을 부리는 인물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이한 행동을 보다보면 마치 그들이 키우는 꿀벌과 농민을 동일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자칫하면 꿀벌통에서 벗어나 이상한 곳에 둥지를 트는 모습, 생산량도 부족하고, 농약에도 민감해 독성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농약을 뿌리면 모조리 사망하는 모습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제멋대로 행동하며, 꿀 생산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며, 문명의 위협 속에서 빚을 지고, 하루하루 근심걱정 속에서 생활의 종말을 기다리고만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 유사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민감하고, 예측불허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도태되어 사장될 꿀벌과도 같은 농민의 삶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첨가물 하나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꿀은 오직 꿀벌만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지 않고, 통제하기 어려우나, 순수한 감정을 나눈 농민의 삶은 그 어떤 도시인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들판에 놓인 침대에 누워 잠자고 있던 가족들이 한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땅 속에 숨기고, 10년 뒤에 찾아본다고 했을 때 무엇을 놓을 것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느린 카메라 패닝을 통해 시간이 흐른 젤소미나 가족이 함께 했던 터전을 보여줍니다. 아무도 없는 집, 빛으로 가득 차 바람 소리만이 남은 황량한 시골. 순수한 어둠과 생명의 울음소리, 그리고 젤소미나가 사랑했던 가족들이 거주했던 집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땅 속에 묻은 그들의 추억은 이 땅을 떠난 농민들에게도, 그리고 함께한 관객들 마음속에 심어져 그들의 순수함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오랜만에 영화에서 느껴지는 메시지의 풍미가 진하고, 상당한 영화를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몽환적이며,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비유적인 표현들 또한 압도적인 클래스를 보여주는 영화라 생각이 듭니다. 이 짧은 글에 영화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들을 모두 녹여내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