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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10화

모든 통신 시도는 가망 없는 노력이었다. 베이스캠프와 우주복 사이 송수신 연결망은 정상이었지만, 그 속엔 목소리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로버를 지탱하는 나노튜브가 바닥에 갈려 나가고 있었지만, 여느 때 보다 로버의 속도가 이렇게 느리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어둠과 적막, 고요히 흐르는 시간 속, 우리의 오감은 저항할 새도 없이 속박되어 버렸다.‘제이슨. 대기 조성비와 기압 확인해보세요.’ 보조석에 앉은 플로렌스가 고개를 짐칸으로 흘끗 돌리며 내게 말했다. 나는 곧장 헬멧 디스플레이 패널을 조작해 최근 하루 동안 베이스캠프 내 대기 조성비를 확인했다. 모든 것은 정상이었다. 오직 밤에 약간 수소 비율이 증가했다가, 줄어든 것이 방금 발생한 재앙의 징후 중 전부였다.‘우리가 수거한 큐브에서 ..

행성 개척자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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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9화

개척 27일 차 초저녁. 나는 남들보다 먼저 일어났다. 턱없이 부족한 수면 시간이었지만, 행복으로 휩싸인 내 몸은 날아오를 것처럼 가벼웠다. 때마침 소행성-인공위성 충돌 대비로 분주해야 할 시기에 활력을 되찾은 것은 다행이라 볼 수 있었다. 한적한 식당에서 홀로 요리하는 맥케이와 인사를 나눈 후, 양자 통신실에서 독서를 하는 플로렌스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요란한 소리가 나는 관리실 문을 열자 주인 없이 돌아가는 큐브 생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지나치며 흘끗 바라본 큐브 생성기 디스플레이엔 탄소 큐브 부족 알림이 표기되어 있었고, 사람이 직접 큐브를 넣어주지 않으면 곧 예약된 리플렉터 생산이 중단될 상황이었다. 나는 곧장 관리실로 들어가 검은색 큐브가 담긴 바구니를 꺼내, 투입구로 큐브를 쏟아냈다. 경고 메..

행성 개척자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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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8화

개척 25일 차, 대원들은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오늘은 3번 터널의 길이가 100m를 돌파해 우리의 마지막 거주지에 큐브 생성기가 설치될 기념비적인 날로 지긋지긋했던 평평한 천장에서 벗어나, 개척의 마지막을 장식할 둥근 천장을 맞이할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나와 패트릭을 태운 사륜 로버는 이 축복을 실현하기 위해 크레이터 서쪽으로 힘차게 내달리며, 큐브 생성기를 봉송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며칠 전 켈리가 방에서 나를 쫓아낸 이후, 단 한 순간도 켈리를 만나지 못했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진실을 감추며, 침묵으로 대응했던 내 유일한 전략이 무너져버린 순간, 내 멍청한 머리로는 켈리의 마음을 다시 열 방도를 생각할 수 없었다. 복잡한 머리를 끌어안은 현실의 나..

행성 개척자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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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7화

개척 16일 차 이른 아침, 나와 대성, 스미스는 초전도 로버에 탑승해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초전도 로버 짐칸에 로프를 고정한 채 앉아 바라보는 크레이터 서쪽의 풍경은 밤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아직은 크레이터 지평선 위로 프로키온이 발산한 흰색 능선이 사라지지 않은 이른 시간, 프로키온의 불빛은 살인 광선답게 디스플레이 패널에 출력되는 방사선 수치를 평소보다 과도하게 만들었지만, 우리에게 만들어주는 광경은 섬뜩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백옥보다 더 깨끗한 흰색 장막이 여행자의 두 눈을 현혹하는 진귀한 광경. 이상하리만큼 정경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지만, 초전도 로버가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흰색 능선은 내 시야에서 연무처럼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거의 다 도착했어요.’ 대성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

행성 개척자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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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6화

마비된 시간 속, 깁스의 형체는 느리게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조각으로 분리된 그의 몸은 솟구치는 원유와 함께 비극적인 포물선을 그리며 검은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팔팔한 동맥은 모든 핏물을 절단면으로 밀어냈고, 외부로 노출된 핏물은 적적했던 우주 허공에 붉은 비를 만들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게 올라간 그의 헬멧은 힘차게 분출되는 피에 회전하며, 멈출 기미 없이 솟구쳤다. 마비된 이성 속, 내 다리는 곧바로 그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딱히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붉은 비가 지상에 도달하고, 그의 다리, 허리, 팔들과 헬멧도 뒤이어 떨어졌다. 선명한 참상은 그의 사망을 나타내는 지표들이었지만, 희미한 희망..

행성 개척자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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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5화

우주복을 입은 나는 한산해진 차고로 걸어 나왔다. 장비가 텅 비어 여유로운 창고, 그러나 묘하게 어수선해 갑갑한 느낌. 차고 한쪽 벽에 세워진 수많은 SBM 부속품들이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었고, 일부 바닥에 놓인 부속품들엔 쥐며느리 로봇이 달라붙어, 용접을 진행하고 있었다. 늘 남들보다 먼저 캠프를 등졌던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배운 적 없었다. 심지어 방금 맥케이와 나눴던 어이없는 상담까지 겹쳐 나는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열린 차고 입구 너머로 대성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야 했구나.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전해지는 자극, 상담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는 늘 전해져오던 자극을 자각하며 그에게 천천히 다..

행성 개척자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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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4화

동트기 전 베이스캠프를 나선다. 방사선 안전 규범은 개나 주라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깁스가 내뱉은 구국의 결단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전달하면 이와 같았다. 이는 한시라도 빨리 우주선 피해를 복구하거나, 추가적인 사태(沙汰)로 발생할 수 있는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그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물론 무리한 야외 작업에 반대도 있었다. 방사선 피폭이 걱정된다는 플로렌스와 사람 대신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복구 작업을 시키자는 스미스가 있었다. 그러나 수소 큐브를 회수해야 한다는 패트릭과 인공지능 티탄의 연결이 끊겨 하루바삐 복구해야 한다는 내 의견을 깁스가 받아들여 프로키온 해가 뜨기 직전, 우리가 베이스캠프 정문에 서 있는 것이다. 정문 에어로크 내부가 감압 된 후 두꺼운 철문이 밖으로 ..

행성 개척자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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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3화

행성 도착 이틀 차, 우주선 7층에 상담실을 배치한 설계자는 분명 개척 경험 없는 탁상 설계자임이 분명했다. 소중한 수면 시간을 줄여가며 향후 개척 방향에 끊임없는 논의와 스트레스에 시달린 엔지니어에게 아침부터, 아니 이 행성의 초저녁부터 높은 사다리를 오르는 일은 고문과도 같았다. 마침내 7층에 다다르고, 패드를 손에 겨우 붙잡을 정도로 기진맥진해진 나는 상담실 철문을 몸으로 밀고 들어갔다.“제이슨. 오늘 좀 많이 피곤해 보이네?” 오늘 대원들에게 들은 말 중 가장 한가한 걱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담사는 개척 관련 업무의 화마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대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걸맞게 상담실의 분위기도 따뜻하고, 온화했다.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적당한 밝기의 조명과 45도로 기울어..

행성 개척자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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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2화

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 쾌청한 날씨와 한적한 도시 외곽지 거리에 놓인 미드나잇 로스트(Midnight Roast) 카페는 근사한 커피 냄새에 비해 이야기 소리는 조용한 장소였다. 미처 닦이지 못한 빗물 자국이 흐릿하게 비치는 투명한 유리 외벽은 투박한 카페 내부를 보여줄 뿐, 이 장소가 담고 있는 향기를 전달하지는 못했으니, 홀로 커피 로스팅 냄새를 독점하며, 사담을 나눌 수 있는 완벽한 장소였다. 에티오피아의 정수를 담은 블랙커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을 때, 검은 비즈니스 가방을 손에 든 사내가 투명한 외벽 너머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카페로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툴시 요세프(Tulsi Yosef). 구릿빛 피부와 정돈된 콧수염이 인상적인 사설탐정으로, 우리는 지난 8년간 이 은밀한 장소에서 그..

행성 개척자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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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행성 개척자 1화

귓가를 강타하는 사이렌 소리는 무한한 우주 속에 길을 잃었던 내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마치 미망(迷妄)한 삶의 시발점으로 돌아왔음을 일깨워주듯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 속, 우주선에 탑승했던 백 년 전 선택을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이한 희망과 함께. 그러나 내 옆구리를 파고드는 딸, 켈리로 인해 상기된 죄책감이 폐에서 역류해 참을 수 없는 숨 막힘을 느끼며. 이 모든 것을 예상했던 나였지만, 결국 무모한 회귀가 거스를 수 없음을 사이렌 소리는 내게 알려주는 듯했다.“인류는 2035년 8월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가족, 친구, 그리고 시간의 동력이 멈춰버린 이 순간을 어찌 잊어버릴 수 있을까? 광속에 몸을 맡겨, 정속으로 흐르는 시간 선에서 탈선한 내가 유일하게 간직하고, 붙잡고..

행성 개척자 2026.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