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
장르 :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감독 : 요아킴 트리에
주연 : 레나테 라인스베(율리에), 안데르스 다니엘슨 리(악셀), 할버트 노르드룸(에이빈드), 한스 올라브 브레너(올레 마그너스), 마리아 그라시아 디 메오(수니바)
상영 시간 : 128분
추천
본인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지 못하며, 저항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던 율리에가 연인 악셀을 만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이 상당히 인상적인 영화인데, 보고 난 후엔 한글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이 훨씬 정확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 얘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닌, 현 프랑스의 연애관, 가족관, 문화관 등을 율리에라는 저항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비추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프랑스는 극심한 변화를 앓고 있습니다. 관습적 가족(아이를 낳는 가족)과 새로운 가족(아이를 낳지 않는 가족)의 대두, 페미니즘(여성의 인권 향상)의 대두와 이에 대항하는 안티-페미니즘(문화 콘텐츠에서 여성을 자유롭게 묘사하는 것을 검열하는 것에 반발)의 묘사, 극성 환경 보호 운동가(탄소 저감 물건만 구매,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 등등 여러 갈등이 묘사되고 있죠. 이와 같은 갈등은 비단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논쟁일 것입니다.
이 영화의 한 가지 매력을 꼽는다면, 위와 같은 갈등을 보여줄 뿐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밝히지만, 이 영화는 승리자도 패배자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지향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그에 걸맞은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영화를 본 관객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제시합니다.
서사적인 측면을 제외하고도 영화의 미장센은 환상적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클로즈업을 통해 여러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냈으며, 인물의 배치, 구도 등을 중심으로 방황하는 율리에의 모습을 특징적으로 잡아내며 인물의 감정을 대사 없이 묘사하는 데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환각버섯에 취해 환상을 보는 시퀀스 등 여러 인상적인 시퀀스가 시의적절하게 등장하여,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 흐름에 변주를 통한 집중 환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웰메이드 프랑스 예술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2. 원더랜드 (WONDERLAND, 2024) |
장르 : SF, 로맨스, 드라마
감독 : 김태용
주연 : 탕웨이(바이리), 배수지(정인), 박보검(태주), 정유미(해리), 최우식(현수)
상영 시간 : 113분
비추천
근 미래, 죽은 사람이나 반려 동물을 화상 통화 방식으로 간직할 수 있는 서비스 '원더랜드'를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개인적으로 추천과 비추천 중 무엇을 골라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한 작품입니다. 원더랜드라는 설정과 이 설정을 다층 분석하여 야기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총 3가지 방향, [수지, 박보검 (실존 남자 친구보다 원더랜드 남자 친구가 더 이상적인 상황) ] / [탕웨이, 딸 (원더랜드 인물이 본인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음) ] / [정유미, 최우식 (원더랜드 관리자) ]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일차적으로 영화적에서 다다르고자 했던 'SF 설정과 이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채롭게 보여준 것은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과 AR, VR의 발전으로 머지않아 인간을 자연스럽게 흉내 낼 것이라는 통찰적인 설정이기도 하며, 이로 인해 야기될 문제가 어떨지도 미리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타 요소들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리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세 이야기가 평행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각각의 서사가 빈약하며, 캐릭터의 감정 논리에서의 비약이 두드러지게 등장합니다. 게다가 원더랜드의 세부적인 설정이 극이 진행됨에 따라 편의적으로 제시되며, 아무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사적인 비약도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CG를 적극적으로 채용해 환상적인 묘사를 시도하였지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국내의 덱스쳐 스튜디오를 필두로 CG업계의 많은 발전이 있었고, VFX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지만, 마블의 어벤저스, 할리우드 영화처럼 적극적인 CG 활용에는 아직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영화를 2시간 길이로 만들기 위해 서사의 많은 부분을 도려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2시간 반 영화여야 할 것이 상업성을 고려해 2시간으로 줄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서사의 빈약함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은 분명히 다다랐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한국형 SF, 드라마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분이며, 근미래 기술 발전에 대한 통찰을 담은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은 '원더랜드'를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3.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3) |
장르 : 드라마, 역사, 전쟁
감독 : 조나단 글레이저
주연 : 산드라 휠러(헤트비히 회스), 크리스티안 프리델(루돌프 회스), 다니엘 훌츠베르크(게르하르트 마우러), 사샤 마츠(아르투어 리베헨셀), 랄프 헤르포트(오스발트 폴), 스테파니 페트로비츠(소피)
상영 시간 : 105분
추천
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을 관리감독하는 루돌프의 가족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에서 거주하며 지내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여태껏 여러 아우슈비츠를 다룬 영화를 보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처럼 잔혹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끔찍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는 처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은 루돌프의 아내, 헤트비히가 가꾼 정원에서 펼쳐집니다. 분명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끊이지 않는 총소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차 시종일관 관객의 신경을 긁는 불편한 공간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회스 가족들은 그 소리에 무관심합니다. Ambient Sound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리)처럼 말이죠. 마치 유대인을 학살하는 나치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그들에게 유대인이 불타는 소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묘사됩니다.
영화는 단순히 소리로만 관객에게 공포를 주입하지 않습니다. 루돌프가 다른 나치와 회동하며 유대인 학살 시설을 진행하는 모습, 강에서 유대인 턱 뼈를 발견하는 모습, 루돌프가 무언가를 태우며 타오르는 연기 속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 등 회스 가족이 있는 공간이 유혈로 낭자한 공간임을 관객에게 계속해서 상기시켜 줍니다.
부가적으로 영화는 고증적으로도 완벽함을 추구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볼 당시엔 몰랐지만, 루돌프는 실제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학살을 감독한 인물이었고, 사과를 땅에 심는 어린아이도 실제 이야기라고 합니다. 역사를 알수록 영화에서 느껴지는 풍미가 짙어지는 완벽한 영화라 볼 수 있죠.
잔인한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 모든 장면이 완벽함으로 재단된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4. 찬란한 내일로 (A Brigher Tomorrow, 2023) |
장르 : 코미디, 드라마
감독 : 난니 모레티
주연 : 난니 모레티(조반니), 마르게리타 부이(파올라), 실비오 오를란도(엔니오), 바르보라 보불로바(베라), 마티유 아말릭(피에르)
상영 시간 : 96분
비추천
난니 모레티 감독의 자전적이며, 현 이탈리아 영화계에 대한 의견을 담은 영화입니다. 주인공 조반니 감독이 한 마을을 개선하려는 이탈리아 공산당 영화를 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메시지가 꽤 직접적입니다. 생명의 존중 없이, 예술에 대한 존중 없이 무차별적으로 찍어 내어지고 있는 현 상업 영화에 대한 비판과 180개국에 유통한다는 권위를 내세우며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에 함부로 손을 대는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OTT 산업에 대한 비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떠나려는 아내와 독자적인 해석을 담은 연기를 보여주는 여배우로 인해 점차 자신의 영화에 관한 예술관이 바뀌어 가는 과정도 표현되어, 본래 다루고자 했던 비극적인 엔딩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으로 변경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용들은 감독이 자신의 생각을 영화를 통해 가감 없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라 느껴졌으며, 이는 마치 이 영화가 하나의 감독의 일기장처럼 느껴졌습니다. 때문에 기승전결 전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들쭉날쭉한 템포를 지닌 이 영화가 낯설고,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해 비추천을 주었습니다. 역으로 전형성을 탈피하고, 감독 난니 모레티가 들려주는 자신의 생각들을 듣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5. 오발탄 (Aimless Bullet, 1961) |
장르 : 드라마
감독 : 유현목
주연 : 김진규(철호), 최무룡(영호), 문정숙(아내), 노재신(어머니), 서애자(명숙), 윤일봉(경식)
상영 시간 : 107분
추천
동명의 소설 '오발탄'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우선 이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961년도 영화이지만, 너무나도 영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인물 구도와 미장센 등 모든 것들이 계산된 것처럼 딱딱 들어맞게 촬영된 것을 보며, '한국은 옛날부터 영화를 잘 만들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 나오는 영화들이 퇴보를 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컷 하나하나 공들이지 않은 장면이 없어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신선했던 점은 1960년대의 서울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금 서울에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판자촌과 옛 시내 거리 등 여러 색다른 풍경들을 볼 수 있으며, 당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연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끔찍한 가난의 환경이 6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어떤 발전을 이룩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한국의 가난한 시절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싶은 분, 그리고 위대한 한국 고전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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