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간단 후기

[영화 후기] 노 베어스 (No Bears, 2022)

무비서포터 2024. 8. 5. 14:48

 

 이란의 명감독이지만, 반체제 투쟁으로 사망한 여대생의 추모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반체제인사로 낙인찍혀 국외로 출국하지 못한 채,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영화 촬영을 이어나가는 자파르 파니히 감독의 작품입니다. 이분의 영화 열정이 어느 정도냐면 다큐멘터리 영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This Is Not a Film)'의 촬영본이 담긴 USB를 케이크에 넣어, 이란에서 파리로 밀반출시킬 정도이죠.

 

 그에게 있어 카메라는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도구입니다. 일반인들에겐 세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장비쯤으로 여겨지겠지만, 파니히 감독에겐 부조리한 이란 사회를 담아내고,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투쟁의 도구로 비칩니다. 대표적으로 젊은 남녀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맹세를 '코란'에 선서하는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관습을 거부하고, 자신이 들고 온 '카메라'에 서약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바꿔가며 말입니다.

 

 영화는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이란에 구금된 감독이 터키에서 촬영하는 영화를 원격으로 감독하는 이야기. 테헤란에서 감독했다면 좋은 인터넷 상태로 감독했겠지만, 촬영 장소에 최대한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자신만의 철칙을 지키기 위해 국경선에 인접한 작은 시골 마을에 머물며 감독하는 상황입니다.

 

 그가 영화에 담아내는 사람들도 상당히 파나히 감독스럽습니다. 두 명의 출연자, '박티아르', '자라'가 등장하며, 이들은 억압스러운 이란 사회에 환멸을 느껴 터키에서 부랑자 생활을 이어나가며 유럽으로 갈 날만을 고대하는 사람들입니다. 파니히 감독은 그들의 삶을 영화적으로 각색하여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실적이지만, 거짓스럽게 등장인물을 담아내는 형국인데... 이런 방식을 취한 까닭은 그들의 삶을 아름답게 찍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추측한 까닭은 감독에게 벌어지는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변방의 시골 마을에 비싼 차를 모는 테헤란 출신의 인물이 왔다는 건 뜨거운 화두일 것입니다. 마을 주민이 그를 존중을 하는 것도, 경계를 하는 것도 예측할 수 있는 반응일 것입니다. 다만, 감독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는 그가 찍은 사진 중 하나가 '관습적으로 있어선 안 될 행동'을 담아낸 것으로 추측되어, 마을 주민들에게 추궁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마을엔 태어난 여아의 탯줄을 끊으며, 미래의 신랑이 될 사람의 이름을 외치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풍습에 따르면 고잘은 야곱과 결혼해야 할 운명입니다. 즉, 고잘은 야곱과는 다른 어떤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불경한 행동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죠. 우연히도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찍어낸 감독의 사진엔 고잘과 '솔두즈'라는 사내가 함께 찍혔다는 얘기가 돌았고, 전통을 어긴 솔두즈를 벌하기 위해 감독에게 증거를 요청한 것이죠.

 

 감독은 상당히 난처할 것입니다. 마을의 크고 작은 이야기에 전무했을 그가 사진을 담아낸 까닭은 그저 '아름답게 비치는 마을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만, 그가 든 카메라가 오히려 무기가 되어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상황으로 이끌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당황스러운 감독에게 밤 중에 찾아온 사진의 주인공, 솔두즈는 일주일 뒤에 국경을 넘어 마을에서 사라질 테니 그전까지만 그 일에 대해 함구할 것을 부탁합니다.

 

 이제 감독이 할 일은 명확해집니다. 일주일 후면 부조리한 풍습의 희생양이 된 '솔두즈'와 '고잘' 커플은 국경을 넘을 것이며, 본래 사진으로 찍고자 했던 '행복한 커플'이라는 환상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감독은 본인의 촬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선 그저 순교자처럼 마을 주민들의 추궁에 거짓으로 답하며, 젊은 커플을 응원하는 것일 겁니다.

 

 감독의 응원은 단순히 마을 주민 커플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담아내는 영화 촬영도 '터키에서 벗어나 유럽에서 행복할 커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초반엔 '자라'만 여권을 얻었지만, 후반부로 가면 밀수업자로부터 '박티아르'도 여권을 받아 유럽으로 향할 수 있게 되죠. 마을에선 사진에 대해 함구하고, 영화는 두 커플이 차를 타고 유럽으로 떠나는 희망적인 엔딩을 기획하며 감독은 이란 내외로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그려내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감독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박티아르의 여권은 사실 가짜였으며, 그가 그려내고자 했던 행복한 결말은 결국 거짓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호된 고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자라'는 감독이 자신을 통해 그려내려던 결말이 '거짓'임에 분개하며 촬영 현장을 떠나 버립니다. 부조리한 전통을 타파하기 위해 본인을 촬영하며 맹세를 하는 장면에서도 마을에 평화를 가져오기는커녕, 도리어 마을의 전통을 위해 희생한 야곱의 분노로 새로운 갈등에 휘말리게 되죠.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 생각한 네모난 프레임, 그 밖은 그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었으며, 그의 선한 의도는 역풍이 되어 프레임 속 인물들을 불행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두 커플의 죽음은 상당히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거짓으로 행복을 빗어내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려던 감독의 카메라는 두 커플을 구원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국경수비대, 여권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죽음이라는 결말에 다다랐습니다. 감독이 담아내고자 했던 행복, 네모난 프레임으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모조리 실패하고 그에게 남은 건 오직 비참한 이란의 현실뿐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문제의 깊이를 헤아릴 수조차도 없는 감독이 절망에 빠진 채로 차량의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며, 영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비단 자파르 파나히 감독만이 정부의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술이란 무한한 자유 속에서 피어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이 정도 퀄리티의 영화를 뽑아내는 이란 감독들의 저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담아내는 프레임 속 해피 엔딩이 현실이 되길 기원하며, 이만 글을 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