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영화 지식

영화에서 공간의 분리 - '기생충'과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통해 이해하기

무비서포터 2023. 6. 26. 22:19

 

안녕하세요. 무비 서포터입니다.

 

오늘은 영화를 보시며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장치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비단 영화는 화면을 통해 모든 것을 표현하는 예술이라 부릅니다. 그렇기에 인물의 감정, 지위, 상황을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소위 미장센(무대 위에서의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 - 위키백과)과 같은 요소를 이용해 표현하는 것이 정교하고, 고평가 받는 이유도 화면의 예술이기 때문이죠.

 

그중 오늘은 같은 공간을 가상의 선으로 분리하는 경우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영화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경우는 두 인물 간에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입장'이란, 여러 가지를 나타낼 수 있는데요. '동상이몽'. '찬성, 반대'. '직위 차이', '보유, 미보유' 등 여러 입장 차이를 나타낼 때 공간분리를 활용합니다.

 

아래부터는 영화 '기생충'과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특히나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영화를 보고 온 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보고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기생충 영화일 텐데요. 이 영화는 예고편부터 공간의 분리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면을 보시면 사모님과 집사는 정원에 같이 있습니다만, 유리창으로 극명하게 갈린 선이 둘의 공간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둘의 '계층'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곳에 있지만, 유리창으로 공간이 분리된 것입니다. 그리고 과외를 하러 온 기우도 집사와 같은 계층이기에 화면 좌측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수를 치며 사모님을 깨우는 장면. 계층을 지정한 선을 뛰어넘어 무례한 행동으로 사모님을 깨운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예시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이처럼 가상의 선으로 '계층 분리'를 표현한 장면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통해 공간의 분리를 알아보도록 할텐데요. 들어가기에 앞서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이라면 영화 추천 게시글에서 간략하게 초반 줄거리를 보고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영화 추천]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작품입니다.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고, 저는 우연한 계기로 영화 클립을 보게 되었는데, 밴 에플

moviesupporter.tistory.com

 

 이 영화는 위에서 소개한 기생충처럼 무수히 많은 공간 분리를 사용한 영화입니다. 특히나 감정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공간의 분리로 능수능란하게 표현하고 있는 예술적인 영화이죠.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셨더라도 아래의 예시를 보고, 다시 영화를 보신다면 감상이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추천에서 소개되지 않은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해드리자면, 리 챈들러는 과거 랜디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벽난로 안전망을 제대로 두르지 않고 술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가 집이 불타버렸고, 세 아이는 참변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둘은 이혼하게 되었고, 가끔씩 연락하는 사이로 지내게 됩니다.

 

 

위 장면은 이혼하기 이전 리 챈들러가 새벽2-3시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논 후, 아내에게 얘기하는 장면입니다. 당연히 철딱서니 없는 리를 보고 랜디는 단단히 화가 나 있지만, 리는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죠. 온전한 정신의 랜디와 제정신이 아닌 리는 창문틀로 분리되어 표현됩니다. 게다가 온전한 랜디는 그녀의 몸이 유리 정중앙에 배치되었고, 가려지는 곳 없이 전부 보입니다. 반대로 제정신이 아닌 리는 유리 중앙에 서지도 않고, 몸이 온전히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빠가 사망하고, 엄마의 집으로 찾아간 패트릭과 리가 인사를 건네는 상황입니다. 엄마와 아들의 공간이 벽으로 분리되어 있어 둘의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리는 패트릭의 엄마를 주정뱅이 망나니로 인식하고 있으며, 엄마는 리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챈들러 가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죠. 그리고 두 남자의 악수가 맞닿는 위치는 화면의 중앙이 아닌, 오묘하게 빗나간 우측. 그들의 만남은 겉으로는 정중해 보이지만, 안정적이지 않고, 불안해 보이는 느낌을 줍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의 분리일 겁니다. 방화 관련 수사 건으로 취조실에 오게 된 리 챈들러. 그러나 경관은 그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고는 취조를 종료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도 취조실 공간에서 유리창틀로 공간이 분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로 집이 타버리고, 아이 셋이 죽은 일에 대해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보이기도 하고, 이후 리 챈들러가 본인 머리에 총을 발포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를 아래의 표로 간단히 표현해 보았습니다.

 

리 챈들러   경찰
본인이 초래한 참사
본인은 유죄
방화에 대한 생각 리의 부주의로 발생한 비극
리는 무죄
X 법 집행력 (권총) O
경찰의 총(법 집행력)을 뺏어 본인의 머리를 조준, 발포 / 유죄 집행 이후 행동 리에게서 총을 다시 뺏고,
집으로 돌려보냄 / 죄를 사함

 

 

영화 후반, 랜디는 다른 남자와 만나 다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리를 만나 사과를 건네게 되는데... 자신이 이전에 했던 말들이 당신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며, 자신도 이렇게 아픈데,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 리의 마음은 더 아플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는 리에게 제발 자살하지 말라는 부탁까지 남기며 눈물을 흘리게 되죠.

 

그러나 여기서도 공간의 분리가 존재합니다. 배경으로 보이는 외벽이 랜디와 리의 입장 차이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를 통해 리가 느끼는 아픔이 랜디와 다르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랜디와는 달리, 과거를 붙잡고 그곳에 여전히 서성이는 리는 분명히 입장 차이가 있을 겁니다. 저는 리가 느끼는 아픔이 어떤 아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그의 말로 추측건대, 무한한 공허함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처럼 효과적으로 사용된 공간 분리는 대화 없이도 인물들의 감정 및 입장을 탁월하게 나타낼 수 있는 수단입니다. 알맞은 공간을 찾고, 인물을 알맞게 배치하는 과정이 까다롭기는 하나, 정교하게 배열된 가상의 선은 극의 정교함을 끌어올리는 좋은 기술입니다. 다양한 영화에서 채택되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시며 화면에 선이 존재하는지 찾아보는 것도 한 가지 영화 보는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