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간단 후기

[영화 후기] 태풍 클럽 (Typhoon Club, 1985)

무비서포터 2024. 6. 27. 12:16

 

 영화 '태풍 클럽'을 영화관에서 보고 왔습니다. 소마이 신지 감독을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안정적인 구도를 능숙하게 잡아내는 원테이크와 점프컷을 활용하여 인물의 감정 동요를 인상적으로 그려내는 것을 보며 일본의 숨겨진 거장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도 메타포를 사용해 정교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생 소년, 소녀들이 가진 각자의 개성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이 '무언가'를 지칭하고 있으며, 최종적인 메시지에 도달하고자 세팅한 감독의 의도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적기 때문에 무엇을 지칭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가장 직접적으로 생각을 언급한 미카미 쿄이치를 중심으로 태풍 클럽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미카미 쿄이치라는 인물은 동급생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이질적인 인물입니다. 야구부를 탈퇴한 후,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고, 학급에서 벌어지는 소동에도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태풍이 다가온다는 소식에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들과는 달리, 그저 책을 바라보며 고개 한 번 들지 않는 인물이죠.

 

 사실 미카미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개는 종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인가?' 여기서 '개'는 '개인'을 '종'은 '종족'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미카미가 자신의 형에게 질문을 남기자, 형은 '죽음은 개가 종을 뛰어넘을 수 없는 증거'라고 언급합니다.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제가 해석한 바에 따르면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한 종족으로 태어나 정해진 형질, 그리고 정해진 죽음은 결코 벗어날 수 없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의 고민은 태풍이 다가옴에 따라 커져갔습니다. 가출한 친구, 욕정으로 동급생을 강간하고자 했던 친구, 태풍에도 춤이나 추며 걱정 없이 사는 친구들, 도저히 존경할 수 없는 선생님까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해 충동적으로 살고 있는 주변 친구들과 성장해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미카미의 심리는 마치 창 밖에서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불안정하고, 혼란하기만 합니다.

 

 그러던 중 미카미는 체육관 강당에서 춤추며 노는 친구들에 합류하게 됩니다. 영화 내내 뚱해있던 그가 처음으로 고민을 내려놓고 '종'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가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자신이 붙잡고 있던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이 '남들처럼 사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세상은 미카미의 걱정과는 달리 평온하고, 문제없는 것처럼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시끄러웠던 체육관 외부는 잠잠해집니다. 비 하나 내리지 않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태풍의 눈 영역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근심이 모조리 사라진 듯한 평온함 속에서 아이들은 속옷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춥니다.

 

 하지만 태풍의 눈이 지나면, 다시 폭풍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종'의 본능을 따르는 것은 미카미의 고민을 해결시켜주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평온하게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지만, 거대한 폭풍이 되돌아온 미카미는 교실 책장 모서리에 앉아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로 사색에 잠깁니다.

 

 앞서 언급했던 미카미와 형의 대화에서 형은 '닭'이 '종'에서 벗어난 '개'의 예시라고 말합니다. 날개가 달렸으나 날 수 없는 새. 새라는 '종'에서 벗어난 '개'의 전형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닭이 '종'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태어나기 이전인 '달걀' 때 시도된 것이 아닌, 태어난 이후인 '닭' 때 시도했을 것이라 언급합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인간이 '종'의 속박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태어나기 이전의 변화가 아닌, 지금 살아있는 순간에 노력하여 뛰어넘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미카미는 깨닫습니다. 모서리에 앉아있던 그가 서서히 책장에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비록 태풍은 지나가지 않았지만, 그의 귓가에 맴돌던 폭풍 소리는 점차 사그라들어 잠잠해지기 시작합니다. 내면의 평화가 찾아오며, 그가 생각해 낸 '종'을 뛰어넘을 경건한 의식을 준비합니다. 바로, '종'이 선사하는 '추악한 죽음'이 아닌, '개'가 선택하는 '우아한 죽음'을 말이죠. 그는 이와 같은 선택을 함으로 인해 사랑, 욕정, 기쁨, 슬픔, 걱정, 미신 등 인간을 속박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승리하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메시지를 썩 달가워하지는 않습니다만, 인상적인 연출법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감독의 저력이 놀라운 영화였습니다. 두고두고 다시 볼 영화라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