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입니다. 개봉날 영화관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큰 충격을 받고, 영화가 일주일 넘게 머릿속에서 맴돌던 기억이 있습니다. 호불호가 상당히 갈려, 박찬욱 감독식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 분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영화 소개 (스포일러 x) |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 작중 서래의 대사 |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스릴러, 서스펜스, 미스터리, 느와르
감독 : 박찬욱
주연 : 박해일(해준), 탕웨이(서래), 이정현(정안)
상영 시간 : 138분
이야기는 해준이 수완에게 질곡동 사건을 함께 해결하자고 제안하며 시작합니다. 해준은 PC방에 질곡동 사건의 용의자 '이지구'가 자주 출몰한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수완에게 혼자 잠복을 맡겨두고 자신은 집이 있는 이포로 내려갑니다. 집에서 아내와 저녁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해준. 정안은 주말부부의 이혼율이 높다며, 해준에게 이포로 내려오는 것은 어떠냐고 묻지만, 해준은 머쓱하게 웃으며 애매한 반응을 보입니다.
화면은 밤에 숲 속에서 수색하는 경찰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한 '기도수'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죠. 해준은 기도수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겠다며 떨어진 절벽을 수완과 함께 등반합니다. 정상에 다다른 그들은 기도수의 유품을 조사하는데, 지갑, 물통 등 모든 물건에 기도수 이니셜이 새겨진 모습을 확인합니다. 자기애가 남다른 인물처럼 보이는데... 해준은 이를 놓치지 않고, 음성 녹음으로 남겨둡니다.
이후 영안실에서 기도수의 아내를 맞이하는 해준은 '많이 놀라셨겠습니다.'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좌우로 젓는 서래. 산에서 돌아오지 않는 그가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다고 말합니다.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이라 그런 것인지, 그의 죽음을 고대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해준은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는 기도수 핸드폰 잠금패턴을 풀어달라고 요청하죠.
이후 병원에서 서래의 몸에 폭력의 흔적과 기도수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하는 해준. 이후 취조를 하는 과정에서 서래에게 직접 폭력을 당하고 있었음을 확인합니다. 추가적으로 기도수의 손톱 및에서 서래의 DNA가 나와, 서래는 유력한 살인용의자가 되죠. 그러나 서래는 기도수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스스로 자해를 했고, 이를 막던 기도수가 자신의 손등을 긁었다고 증언하죠. 추가적으로 경찰 조사 결과, 사건 당시에 서래는 간병인으로서 할머니를 보살피고 있었으며, CCTV에서도 그녀가 할머니 아파트에 머물고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충분한 알리바이로 무죄로 풀려나는 서래. 그러나 해준의 후배, 수완은 서래에게 홀려 대충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며 해준을 몰아세우죠. 수완의 말에 찝찝함이 남았는지, 해준은 그녀의 집 앞에서 잠복을 서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 '은유로 가득 찬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서정적인 감정 서사를 좋아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싫어하는 분',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인물을 보기 싫어하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게 된 계기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노래를 들으며 시작하시죠!
'헤어질 결심'은 남편을 잃은 '송서래'와 그녀를 취조하는 '장해준'이 서로 얽혀 종잡을 수 없는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된 감정인지, 자신을 이용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중인물을 헷갈리게 하며, 심지어 관객까지 헷갈리게 하는 영화이기에 종잡을 수 없다고 표현해 보았습니다.
우선 서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간단하게 첫 파트는 탕웨이 첫 남편의 사망 및 수사, 두 번째 파트는 탕웨이 두 번째 남편의 사망 및 수사로 나뉩니다. 유사한 파트 진행이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으나, 두 파트 간에 유사점 혹은 대비되는 지점을 찾는다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배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주요 인물은 탕웨이가 연기한 송서래라는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이 인물은 주변 인물에게는 싹싹한 간호인으로, 그리고 남편을 잃은 불쌍한 중국인 아내로 보입니다. 한국어가 서툴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웃어버리는 그녀. 마치 남편이 죽은 것에 기뻐하는 사이코스러운 마음이 새어 나온 듯하나, '중국인이니까, 한국어가 서투니까, 그런가 보다' 하며 한국인의 관대함을 이용해 그 상황을 모면해 내는 그런 인물입니다.
그녀는 머리가 좋습니다. 비록 말하는 모습은 어눌하지만, 한국어를 완벽하게 습득한 인물입니다. 대표적으로 두 번째 남편과 문자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한국인스럽지 못한 한국어를 선보인 남편에 비해 문법, 단어 하나 이상 없이 써 내려간 모습이 대조적이죠. 이처럼 한국어 습득 능력 및 두 남편의 죽음에 관한 수사에서 의심을 피할 정도의 범죄 계획 수립 모습은 송서래라는 인물의 비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캐릭터 설정이 마음에 드는데, 그 이유는 고도의 지적 능력 때문에 살인마 송서래라는 인물을 더 믿지 못할 존재로 사람들에게 부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해준(박해일)은 송서래를 연민하다가, 사랑하게 된 인물입니다. 가정폭력 때문인지, 서툰 한국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후배에게도 사주지 않는 비싼 초밥을 송서래와의 첫 만남부터 대접하죠. 예의상 보이는 친절보다 과도한 친절.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담배를 피워도 끄라고 언질을 주는 것이 아닌, 오히려 담뱃재를 털어주는 상냥한 모습까지 보이는 인물입니다.
객관적인 것은 진실이 아니다 |
1부의 카메라 시점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취조하는 박해일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만, 탕웨이는 카메라를 통해서, 비치는 거울을 통해서 그녀를 보여주죠. 위에서 언급한 거울과 카메라는 빛에 반사되어 맺힌 상을 보여주는 도구와도 같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객관적으로 남을 묘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맺힌 상에서 멈춘다면 진실된 탕웨이의 내면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탕웨이는 머리가 좋고, 남 앞에서 자신을 감추고, 변장하는 것에 능합니다. 그렇기에 망원경에 맺힌 상을 넘어,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박해일만이 그녀의 본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던 것입니다.
여담으로 2부에서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하는 탕웨이의 모습, 사진에 찍힌 탕웨이 옷이 초록색이 아닌 파란색인 것을 되뇐다면, 진실된 그녀의 모습이 객관적이라고 불리는 도구를 통해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류 그러나 단절된 |
맺힌 상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박해일은 탕웨이와 정서적으로 교류합니다. 녹음과 함께, 저녁으로 아이스크림, 담배를 피우며 마침내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순간을 보내며 말입니다.
반대로 탕웨이는 아침에 차량에서 잠을 자고 있던 박해일을 발견하고 여유롭게 '굿모닝' 인사를 남기며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이 묻은 까마귀의 깃털을 박해일 집에서 발견하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당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이에 그녀는 미소를 짓는데, 자신이 무엇을 하던, 그가 지켜보고 있어 든든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첫 시작은 서로를 이해하며,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일 것입니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스킨십을 하며 감정의 탑을 한층 한층 쌓아가는 것. 그러나 이 영화에서 쌓아가는 감정의 탑은 상대방과 교류 아닌 교류를 하며 스스로 쌓아가는 감정의 탑이며, 그 두 탑이 맞물렸기 때문에 이 관계가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두 사람이 함께 요리를 하거나, 절에서 시간을 보내는 둥 직접적인 만남을 가지지만, 저는 그 과정을 스스로 쌓아온 탑을 상대에게 확인시켜 주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예시로 1부는 절에서 박해일이 그간 해왔던 녹음을 탕웨이에게 들려줍니다. 단순히 비치는 그녀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녀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모습까지도 빠짐없이 이해하고 있음을 그녀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반대로 2부에서는 벼랑 끝, 박해일 뒤에는 자신을 죽일 살인마일지, 자신을 사랑할 한 여자가 서있는지 모를 절체절명의 상황. 박해일은 두 눈을 불끈 감고,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립니다. 탕웨이는 박해일을 힘껏 안아주었고, 그녀의 사랑을 박해일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이처럼 서로 만나지 않았을 때는 녹음을 듣고, 상대방을 되뇌며 감정의 탑을 쌓고, 간혹 만날 때마다 둘의 감정이 변치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를 '다른 시간, 같은 공간', '다른 공간, 같은 시간', 그리고 '과거의 녹음'을 통해 그들이 감정을 쌓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체가 바라보는 세상 |
아마 영화에서 독특했던 샷 중 하나는 시체가 형사 박해일을 바라보는 장면일 것입니다. 그 시점은 시체가 바라보는 세상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우선 산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을 먼저 얘기해 봅시다. 작중 박해일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시체에는 파리가 먼저, 다음 개미, 마지막으로 딱정벌레가 찾아온다.'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형사에게 벌레는 사망한 시신의 시간을 유추하게 도와주는 것이기에 산 사람이 보는 세상에서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반대로 살해당한 사람은 무엇을 볼까요? 살해 직후에는 자신을 죽인 살인마를 바라볼 것입니다. 다음엔 형사 및 검시관이 찾아와 자신을 둘러볼 것이고요.
여기서 탕웨이와 박해일의 공통점이 나타납니다. 둘 다 시체가 바라본 세상에 속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시체가 가장 먼저 본 사람은 탕웨이,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박해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두 번째 남편 살해 현장에서 탕웨이가 핏물을 비우고, 시체를 바로 세우자, 시체가 갑자기 눈을 뜨며 탕웨이를 노려봅니다. 두 번째 남편은 비록 탕웨이에게 직접적으로 살해당하지 않았지만, 사후 가장 먼저 보게 된 인물이 탕웨이라는 것이죠.
평범하지 않은 세상에 속한 탕웨이와 박해일이 사랑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다시 다른 시간 |
시체에 묶인 세상에 사는 그들은 아쉽게도 사랑하는 시간이 다릅니다. 박해일이 언급했던 것처럼, 시체를 분해하는 고유한 벌레의 시간이 있듯, 그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사랑마저도 그 시간대가 달랐습니다.
1부에서는 박해일이 사랑을 보냈지만, 탕웨이는 오히려 그 점을 이용했으며, 2부에서는 탕웨이가 사랑을 보냈지만, 박해일은 복구되지 않은 상태였죠. 결국 마지막에 파도처럼 감정이 밀려와서야 그녀를 찾으러 나섰지만, 다시 또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사건이 헤.결.되면 시체는 정리되고, 형사는 사라질 것이지만, 미결이라면 시체는 남고, 형사는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범인을 찾아 나서겠죠. 이와 같이 탕웨이는 박해일에게 밀려온 감정의 파도가 헤.결.되지 않는 이상, 세상 어딘가 존재할 자신을 찾아 나설 것을 알았기에 스스로 미결을 선택하고 영화가 끝이 나게 된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헤결 될 수 없는 미결 사건"
영화 추천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정각에 업로드됩니다.
'보고 추천하는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추천] 더 포스트 - 진정한 언론의 미덕 (The post, 2017) (1) | 2023.07.12 |
---|---|
[영화 추천] 8월의 크리스마스 - 죽음을 앞둔 이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Christmas in August, 1998) (0) | 2023.07.10 |
[영화 추천]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2012) (1) | 2023.07.05 |
[영화 추천] 붉은 돼지 (Porco Rosso, 1992) (0) | 2023.07.03 |
[영화 추천] 아메리칸 셰프 (Chef, 2014) (0) | 2023.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