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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천]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2012)

무비서포터 2023. 7. 5. 00:00

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액트 오브 킬링'이라는 영화입니다.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14위에 선전된 바가 있으며, 온갖 시상식을 휩쓸고 다닌 다큐멘터리 명작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1965-66 인도네시아 대학살 사건을 모티브로 다루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가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끔찍한 사건을 가해자의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영화, 액트 오브 킬링. 여러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영화 소개 (스포일러 x)

 

 

액트 오브 킬링 예고편

 

"당신이 저지른 학살을, 다시 재연해 보지 않겠습니까?"

- 극 중 조슈아가 안와에게 건넨 제안

 

 

장르 : 다큐멘터리, 범죄

감독 : 조슈아 오펜하이머, 크리스틴 신

주연 : 안와르 콩고, 헤르만 고토, 시암술 아리핀

상영 시간 : 159분

 

  영화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인도네시아를 취재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살에서 처형을 담당했던 안와르 콩고를 만난 조슈아는 당시의 학살에 대해 묻습니다. 마치 나치의 아유슈비츠 군인들처럼 자신의 악행을 부끄러워할 것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그는 자랑스럽게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고 합니다. 조슈아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 보고자 '그렇다면 당신이 했던 일을 영화로 재현 보겠냐'라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신이 난 안와르는 자신의 영광스러운 업적을 재현할 절호의 기회라며 마을 주민들을 캐스팅하기 시작하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스포일러는 여기까지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직접 영화를 보시면서, 그들이 어떻게 영화를 촬영하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대학살의 주범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분',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정치를 살펴보고 싶은 분', '사회고발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간접적인 고문 묘사여도 불쾌감을 느낄 분', '사회고발적인 영화를 싫어하는 분', '다소 지루한 영화를 싫어하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게 된 계기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념의 시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거대한 두 이념이 충돌하는 냉전시대로 돌입합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죠.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모습을 기억해 보자면 남한에서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몰려 숙청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공산주의를 옹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빨갱이로 몰려 험한 꼴을 본 사람도 적지 않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장려되던 풍조였습니다. 한국전쟁과 판문점 도끼 학살,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여러 사건들은 북한에 대해 악감정을, 더 나아가 공산당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 경계심이 극에 달해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당시 상황도 한국과 유사했습니다. 여러 이념 세력들이 공존하던 인도네시아에 쿠데타 미수 사건이 발생하여 반공주의 열풍이 불어 닥쳤고, 최소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몰락하게 되었죠. 추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미국의 사주와 묵인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냉전의 연장선에 위치한 사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 놓인 사람들

 

 

 이념의 광풍이 몰아닥친 시대에 소시민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미친 세상에선 자신도 같이 미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성적인 생각, 도덕적인 행동이 오히려 터부시 되는 세상. 영화는 안와르 콩고와 아디 줄카드리라는 인물을 대조적으로 조명하며 어떻게 그 사건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아디 줄카드리라는 인물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역사란 승자의 관점으로 쓰이는 것이며, 당시에는 공산당원들을 죽이는 것이 옳았다고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대량학살은 인도네시아에서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영국의 아일랜드 탄압, 일본의 난징 대학살, 중국의 위구르 및 티벳 탄압, 우리나라의 삼청교육대 등 비인륜적인 행위는 인류와 떼어놓을 수 없는 비참한 역사입니다. 다만 몇몇 학살은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지만, 역으로 회자되지 않는 학살들도 존재합니다. 이는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약자였으며, 현재도 약자일 경우입니다. 즉, 힘의 논리에 따르면 아디 줄카드리가 사과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학살의 광풍에 휩쓸렸던 소시민이 후회를 하든, 말든 여전히 강자의 위치에 서 있다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겠죠.

 

 그리고 헤이그 법정에 소환돼도 자신은 떳떳하다며,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구체적인 이유가 포함된 주장은 아니지만, 제 관점에서는 실제로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일본 사학자가 작성한 2차 대전 일본 전범 재판에 대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의 말로는 연합국은 일본 전범을 처리하기 위해, 범죄 유형을 A, B, C로 구분하여 전범들을 기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판대에 올라간 사람은 오직 지도부, 혹은 간부들만 재판대에 세워졌습니다. 일반 사병들은 재판에 올라가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 대부분이 상부의 명령을 받아 임무를 충실히 한 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과 다른 명령을 받더라도, 명령에 불복한다면 군법에 의해 사형이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당시 풍조에 따라 살인을 저지른 모든 인도네시아인을 국제 재판에 세우는 일은 높은 확률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안와르 콩고는 친구 아디와는 조금 다릅니다. 공산당원을 죽이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점은 공통분모이지만, 아디와는 다르게 자신의 살인을 다른 사람들에게 으스대며, 자랑스럽게 살아갑니다. 그는 당시의 학살을 이념의 갈등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악한 사람들과의 전쟁이었고, 마땅히 그들을 죽여야 했다고 생각하죠. 그는 공산당에 분노하는 사람입니다. 암표를 팔며 돈을 벌던 그는 비싸게 팔리는 할리우드 영화 상영을 제한한 공산당에 분노를 품기 시작합니다. 원하는 영화를 보고, 원하던 대로 돈을 버는 자유로움을 갈망하던 안와에게 공산당은 악마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라의 분위기가 증오하던 공산당을 처벌하자는 판으로 바뀐 상황을 안와가 반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요.

 

 그는 이념의 싸움을 자신의 싸움으로 끌어당깁니다. 공산당은 자신을 공격했으며, 나는 맞서 싸울 것이다. 외부적인 요소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의로 학살을 주도한 순간부터 그의 자아는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죠. 순진무구했으며, 자유를 사랑했던 청년은 어느 순간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즐기는 살인귀로 변해갔죠. 그는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가, 시신의 눈을 감기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그제야 자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살인귀로 변했음을요.

 

 

 감독 조슈아의 말에 따르면 그가 인터뷰한 40여 명의 사람 중, 오직 안와르 콩고만이 PTSD 증상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자각해, 죽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가진 인물. 잠을 잘 때마다, 죽은 이가 찾아와 자신을 괴롭히는 악몽을 꾸는 인물. 그 후회를 덮기 위해, 당시 자신의 행동을 성스럽고, 숭고했던 영웅적인 행위였다고 자기 위로를 남기던 인물. 그러나 자기 자신을 변호할 때마다 변해가던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인물.

 

 안와르 콩고는 영화 마지막, 이전에 묘사했던 고문 장면을 다시 묘사하며 헛구역질을 합니다. 풍조에 잠식되었던 그가, 드디어, 온전한 자아로 자신이 일평생 회피해 왔던 살인의 책임을 드디어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이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지금 죄책감을 느낀다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지는 않는걸요.

 


  2019년에 안와르 콩고는 사망했다고 합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그는 착한 성품을 지닌 이였다'라고 회고하며 추도문을 남겼는데요. 거대한 이념의 갈등 속, 소시민의 행동은 그의 성품으로 결정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풍조에 잠식되어 저지른 행위는,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게 되고"

 

영화 추천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정각에 업로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