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우리나라 영화 멜로 중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들고 왔습니다. 한석규와 심은하의 잔잔하며, 절절한 연기가 압권이며, 허진호 감독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감성 넘치는 작품이죠. 20여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은 표현 방식들은 이 영화의 늙지 않는 진가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아름다운 사랑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영화 소개 (스포일러 x) |
"아저씨는 왜 나만 보면 웃어요?" - 극 중 다림의 대사 |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감독 : 허진호
주연 : 심은하(다림), 한석규(정원), 신구(아버지)
상영 시간 : 97분
이야기는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그는 초원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사입니다. 원하는 대로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사장이기에, 늦잠도 마음껏 잘 수 있죠. 일어난 그가 향한 곳은 사진관이 아닌 병원. 정원은 그곳에서 복도 맞은편에 앉은 아이를 보며 씩 웃습니다. 이를 본 아이도 웃으며 그에게 화답하죠. 병원에서 나온 정원은 학교 운동장에 앉아 '아이들이 사라진 운동장에 앉아 종종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는 했다.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처연한 눈으로 운동장을 바라봅니다.
일상대로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던 정원은 절친 철구의 연락을 받습니다. 연락을 받은 그가 향한 곳은 철구 친인척의 장례식장. 곡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지만, 식사시간이 되자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정원. 쓸쓸히 그들의 뒤를 쫓아갑니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자 단골, 다림이 사진관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단속 차량 번호판을 읽기 위해 사진 확대를 부탁하려고 했지만,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정원은 다소 무례하게 다림을 대합니다. 까칠한 그를 피해 더운 밖에서 나무 그늘에 서서 사진을 기다리는 다림. 정원은 격하게 행동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녀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건넵니다.
이후 정원을 다시 찾아오는 다림. 사진기 수리와 함께, 주차 단속을 하며 겪은 고초와 그의 나이, 생일을 파묻습니다. 작은 아이스크림 선물과 아이들과 격 없이 잘 지내는 모습에 정원에게 호감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적극적인 그녀의 표현에 정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둘의 사이는 더 가까워집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소설 같은 영화를 보고 싶은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싫어하는 분', '간접적인 표현을 싫어하는 분', '옛 영화를 싫어하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게 된 계기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에 앞서, 노래를 들으며 시작하시죠!
역설적인 제목 |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은 얼핏 들어도 성립되지 않는 제목임을 잘 아실 겁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8월에 크리스마스가 온다는 거야?'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역설적인 제목은 극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죽음을 남들에게 알리고, 삶과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암담하게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더 확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중단하기도 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주인공 정원은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다림을 막아서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그녀에게 사랑만, 추억만 온전히 남기고자 노력하는 정원. 주변 인물들에게 슬픔이 아닌, 행복을 선물하는 정원. 관객은 압니다. 그들의 사랑은 정원의 죽음으로 끝이 나게 될 것이고, 정원의 행동들은 미련할지도 모른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은 다림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기게 됩니다. 다림이 그를 기억할 때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그런 기억들이요. 여기서 영화가 주는 질문은 다음과 같죠. '죽을 사람은 사랑해선 안됩니까?'. 이는 마치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시기가 아닌,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본질을 깨닫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참고로 정원의 생일은 8월입니다. 그래서 그런데... 8월에 크리스마스가 와서는 안 되나요?
생략의 묘미 |
영화 내 등장인물들은 말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대화 소리가 아닌, 음악 소리로 덮어 그들의 얘기를 관객은 파악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는 의도적으로 생략한 부분들로 영화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면 정원은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병에 걸려 사망했는지 모릅니다. 쓰러져 병원에 입원할 만큼 심각하며, 사랑했던 다림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 병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빗길에서 우산을 나눠 쓰던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우리는 확인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어깨 한 편을 젖게 만들어도 괜찮을 정도로 좋은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 추측만 할 뿐이죠.
추측이라는 것은 결국 관객이 공백을 자신의 경험으로 채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기뻤던 기억, 슬펐던 기억, 낙담했던 기억 등등 극에서 주어진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경험을 기억하고, 채워 넣게 된다는 것이죠. 이 과정을 통해 관객은 극 중 등장인물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며, 극에 더 몰입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적당한 생략의 묘미를 이용해 고고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생략하지 않은 이유는 |
극 중 유일하게 생략되지 않은 대화는 한 공원길을 둘이 걸으며, 정원이 군대에서 겪은 귀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방귀 뀌는 귀신에 대한 얼토당토 없는 농담. 저는 이 황당한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둘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감독이 이 이야기만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귀신은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입니다. 그 영혼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각기 사연이 다르겠지만, 남겨진 사람 때문에 떠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들은 산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나타나거나, 소리를 내거나, 물건을 움직이는 둥 여러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 노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렵게만 하는 것이 아닌, 귀신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징표를 제시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초소 귀신 또한, 자신의 징표인 방귀를 뀜으로써 본인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리고 역으로 망자를 붙잡는 것은 산 사람일 것입니다. 통곡하며 붙잡을 수도 있고, 마음 한편에 담담히 담아둘 수도 있습니다. 떠나간 이와 함께한 시간이 마음에 남긴 자국을 품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사람이 망자를 붙잡는 것이고, 결국 추억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정원은 마치 초소 귀신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산 사람에게 자신이 곁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귀신이요. 다림은 그를 추억합니다. 죽은 지도, 어딘가로 떠나간지도 모르는 정원에게 좋은 기억만 가지고 추억합니다.
영화의 엔딩, 사진사였던 정원은 사진을 통해 자신의 자취를 남기죠. 밝게 웃고 있는 정원의 영정사진은 떠나가기 이전에 좋은 추억만 담은 듯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어받은 사진관에는 밝게 웃는 다림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떠나간 정원이 다림을 사진으로 추억하고 있다며, 남겨둔 그의 흔적. 다림은 초소 병사의 방귀 냄새처럼, 사진을 통해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 멜로 영화를 오랜만에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멜로도 좋으나, 이렇게 담백한 멜로 한국 영화도 종종 극장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아무튼 저는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남겨줄 삶의 마지막 추억"
영화 추천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정각에 업로드됩니다.
'보고 추천하는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추천] 스포트라이트 - 곪은 사회 문제를 밝혀내는 언론 (Spotlight, 2015) (1) | 2023.07.14 |
---|---|
[영화 추천] 더 포스트 - 진정한 언론의 미덕 (The post, 2017) (1) | 2023.07.12 |
[영화 추천]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21) (0) | 2023.07.07 |
[영화 추천]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2012) (1) | 2023.07.05 |
[영화 추천] 붉은 돼지 (Porco Rosso, 1992) (0) | 2023.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