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2018년도에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을 가져왔습니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수상이라는 영예를 누린 것과는 대비로, 일본 우익의 축하를 받지 못한 영화로 유명합니다. 강도 높은 사회 비판을 함유하고 있는 이 작품을 향해 '일본에 이런 가족은 없다!'라고 언급하며 일본의 수치라고 비난을 가하기도 했죠. 정작 제가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들었던 생각은 '일본이 이렇게 안 좋구나'라는 생각보다는,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목표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었던 영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 불편을 의도한 영화. 이제껏 보아왔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이 드는 '어느 가족'을 추천합니다.
- 영화 소개 (스포일러 x)
"이건 비밀인데 우린 가족이야." - 작중 아빠(시바타 오사무)의 대사 |
장르 : 드라마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 릴리 프랭키(시바타 오사무), 안도 사쿠라(시바타 노부요), 마츠오카 마유(시바타 아키), 키키 키린(시바타 하츠에), 죠 카이리(시타바 쇼타), 사사키 미유(유리)
상영 시간 : 121분
이야기는 부산스러운 한 마트에서 시작합니다. 쇼타는 진열대를 바라보고 물건을 집요하게 쳐다봅니다. 이윽고 아빠, 오사무와 눈빛을 교환한 후, 알 수 없는 손동작을 보이는 쇼타. 오사무가 교묘하게 점원의 시선을 가리자, 능숙하게 물건을 자신의 가방에 넣습니다. 둘의 환상적인 절도 범행이 이어지고, 성공적인 수확을 거둔 둘은 고로케를 사들고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간다. 그러던 중... 한 여아가 추운 집 밖으로 쫓겨나, 떨고 있는 것을 목격한 둘. 생계를 위해 절도를 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인 그들이지만, 여아에게 선 듯 고로케 세 개를 나눠준다. 그리고 추운 밖이 아닌, 자신들의 따뜻한 집에서 잠시 머물게 돕는다. 그러나 엄마, 노부요는 어디서 또 아이를 주워왔냐며,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한다. 그도 그런 것이 어려운 형편에 이미 입도 다섯 입이나 붙어 있으니, 새로 사람이 느는 것을 반길 수 없는 노릇. 결국 오사무와 노부요는 여아, 유리를 주운 곳으로 다시 데려간다. 그러나 문 밖,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날카로운 고성. 들어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집안 풍경이 노부요의 머릿속에 펼쳐진 듯,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오사무에게 유리를 우리가 키우자고 제안한다. 결국 다시 유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그들. 앞으로 그들에게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까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사회 비판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분', '잔잔한 울림을 주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 '사색에 빠지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오글거리는 대사를 싫어하는 분', '부도덕한 등장인물을 보기 싫어하는 분', '잔잔한 영화를 싫어하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고레에다 감독의 연민이 담긴 사색의 결과
영화 '어느 가족'은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가상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버림을 받은 이유는 짧은 가방끈과 가난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들과, 가정에서 학대받고, 무관심 속에서 버림받은 자녀들이 모여있죠. 그들이 모여 지내는 집은 도심 한복판에서 한 할아버지가 남긴 낡은 집, 노른자와 같은 땅을 재개발하고자 하는 이들은 헐값에 땅을 매도하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빠 오사무와 엄마 노부요는 각각 건설현장 및 세탁공장에서 푼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 셋 중 한 명은 향락시설에서 몸을 팔며 돈을 벌고, 어린 둘은 절도를 하며 생계를 돕고 있죠. 적법한 방법으로는 쥐꼬리만 한 월급에 상해를 입어도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 오히려 적법하지 않은 방법이나, 부도덕하게 취득한 돈은 월급에 비해 액수가 크기에 그들을 더욱더 어두운 그늘로 이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가슴 한편에 따뜻한 연민을 품고 살아갑니다. 영화 초반, 추운 겨울날 집밖으로 쫓겨난 유리를 보고 따뜻한 고로케를 나눠주며, 학대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고자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오사무. 처음에는 입이 하나 더 느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가족들도 유리가 다시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면, 똑같이 학대를 당할 것을 걱정해 품어주기로 결정합니다.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노부요는 돈과 유리 중 유리를 선택합니다. 당장의 이득에 필사적으로 목을 매달아야 할 것 같은 상황임에도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더 앞서는 사람들입니다.
상처를 받은 장소와 시간을 다르지만,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유리의 화상자국과 노부요의 다리미 화상자국입니다. 하나는 사회로부터, 다른 하나는 가족으로부터 생겨난 상처이죠. 그러나 겉으로든, 마음 깊숙한 곳이든 생겨난 상처의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기에 모인 이유는 달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돈에 대한 갈망은 그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게 합니다. 오사무가 건설 현장에서 다쳐서 돌아왔을 때, 그를 부축해 주던 이를 극진히 대접한 것은 산재 보상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사무가 다친 것은 산재로 돈을 벌 경사였다가, 보상을 받지 못하자 일을 못하는 식충으로 전락해 버리죠. 이혼한 남편 장례식에 매번 찾아가 제를 지내는 하츠에는 진정한 추모를 하기보다, 남편의 자식들이 건네는 3만 엔에 더 큰 의의를 두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하츠에가 사망하고 남은 이들이 그녀가 모아둔 돈을 발견했을 때, 살아생전 '장례식을 위해 보험을 들어두었다'는 하츠에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이 어디에 사용할지 고민만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하츠에가 사망했음에도 그녀에게 지급되는 연금을 꼬박꼬박 수령하고는 하죠.
고레에다 감독은 사회에서 버려진 가족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동시에 그립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감독은 실제 일본 사회에서 버려진 이들을 관찰해 온 것 같습니다. 그들을 연민하지만, 그들에게 놓인 상황이 그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어버리는 형국에 개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왜 이들을 보듬어주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그렇다면 이들을 묶어, 가족의 사랑으로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봅니다.
이런 추측을 하는 이유는 노부요가 유리에게 건넨 인상 깊은 말 때문입니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진짜 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꼬옥.'이라는 대사, 가정폭력을 당하고 집을 떠난 유리에게 건넨 말입니다. 그러나 같은 모양의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노부요는 사회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이죠. 따라서 해당 대사는 유리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닌, 노부요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들이 속한 소외받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가족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감독은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이들에게 매질을 할 것이 아닌, 사랑으로 보듬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감독은 그들을 가족으로 묶은 것입니다. '가족'이라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연민이 가득 찬 사색의 시작이죠.
사색의 결과는 등장인물 '쇼타'를 통해 나타납니다. 영화 초반, 잠에서 깨어난 가족들을 옷장 안에서 누워 바라보는 쇼타. 화면은 마치 쇼타가 가족들과 다른 세상에서 지내고 있는 것처럼 연출됩니다. 마치, 외부인이 그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말이죠. 실제로 쇼타라는 인물은 똑똑하고, 꿈을 품고 살아가는 어린아이처럼 묘사됩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오사무를 위해 책을 읽어주는 모습 등 여러 방면에서 속한 가족과는 다른 인물임이 묘사되죠. 자신보다 어린 유리가 주도적으로 도둑질을 하려는 모습에 환멸을 느낀 쇼타는 아빠로부터 내려오는 악습을 깨기 위해 스스로 경찰에 잡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는 가족이 깨지게 되는데, 이것이 진정 감독이 원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가족이 필요 없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옆에서 쭉 관찰해 온 결과,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가족이지만, 악폐습을 계속 물려주는 가족. 그 굴레를 끊어야 하기에 경찰에 의해 어느 가족은 해체됩니다. 다시 기존의 사회로 회귀를 하는 이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줄만 알았던, 가족이라는 형태는 화면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엔딩 장면에서 쇼타가 뒤돌아 오사무에게 나지막이 '아빠'라고 속삭이는 장면은 '형태는 사라졌지만, 마음속에 남겨진 가족'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즉, 이런 가족이 실제로 구현된다는 것이 아닌, 사람들 마음속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꿈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민이 담긴 사색의 결과'가 바로 영화 '어느 가족'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일본의 명감독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구심점은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작중 '스위미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작은 물고기들이 거대한 참치에 맞서기 위해, 뭉쳐서 거대한 가상의 물고기를 형성하는 이야기입니다. 그중, 스위미는 색이 검기에 가상의 물고기의 눈을 담당하겠다는 동화이죠. 영화는 마치 거대한 참치라는 위협이, 세상으로부터 그들에게 가해지는 위협과도 같으며,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 모여있는 그들의 형상이 작은 물고기들의 모임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물고기가 모여, 만든 허상의 거대한 물고기. 굳건할 것 같은 유대이지만, 거대한 위협에는 곧장 자리를 이탈해 뭉개져 버리는 그런 물고기. 이를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비로소 혼잡해 보였던 영화가 하나로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한줄평과 함께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소외된 이들을 바라보며, 연민과 이성을 함유한 사색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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