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입니다. 한순간에 벌어진 재앙으로 아수라장이 된 서울에 넘어지지 않고 온전한 '황궁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암울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다소 어두운 분위기로 작품이 진행되는데, 영화 배경에 완벽하게 동화된 배우들의 명품연기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특히나 이병헌 배우의 연기는 미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이로운 수준의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게다가 미장센과 음악도 인상적으로 눈과 귀도 보는 내내 즐거웠던 영화였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폭발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여러분들에게 당당히 추천드립니다!
영화 소개 (스포일러 x) |
"아파트는! 주민의 것!" - 극 중 황궁 아파타 주민들의 대사 |
장르 : 포스트 아포칼립스, 드라마, 액션, 스릴러, 재난, 군상극, 디스토피아
감독 : 엄태화
주연 : 이병헌(영탁), 박서준(민성), 박보영(명화), 김선영(금애), 박지후(혜원), 김도윤(도균)
상영 시간 : 130분
영화는 황궁 아파트의 일대기를 촬영한 여러 비디오를 쭉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없던 서울 시내에 많은 사람들의 주거를 책임지기 위해 건설되기 시작했던 아파트는 점차 삶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대가 된 지금, 의문의 지진이 서울을 덮칩니다.
민성은 점퍼를 입은 차림으로 잠에서 깨어납니다. 마루로 나온 민성은 창밖을 내다보는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전한 것 하나 없는 절망적인 서울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오직 민성의 아파트만 온전하게 남아있는 상태. 주위에 거주하던 생존자들은 그 아파트로 몰려들기 시작하죠. 잠시 주위를 둘러봤던 민성은 집으로 돌아와 명화와 함께 남은 식량을 확인합니다. 명화 아버지가 보낸 떡도 썩지 않고,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날 밤, 외부인들은 강추위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황궁 아파트의 문을 두드립니다. 민성의 집도 예외는 아니었죠. 아이를 데리고 피신 온 한 어머니는 제발 그들의 집으로 들여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의 물건을 건넵니다. 어쩔 줄 몰라하던 민성의 뒤로 명화는 곧장 문을 열어 그들을 받아줍니다. 방과 침구류를 내어주며 선의를 베풀죠. 다음날, 아래층으로 내려온 민성은 잡상인이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음식을 물이나 쓸만한 것과 교환을 하고 있었죠. 이에 민성은 자신의 시계와 복숭아 통조림을 교환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귀하게 얻어온 복숭아를 외부인과 나누기는 싫었던 민성은 명화를 몰래 방으로 불러 몰래 복숭아를 나눠 먹습니다. 그러나, 문이 열리고 점심을 준비하려던 외부인에게 그 광경을 딱 걸리고 말았죠. 멋쩍은 상황에 그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넘어갑니다.
몰려온 외부인들과 아파트 주민들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민에게 칼로 상해를 입히고, 불을 내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주민회의에서 불을 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한 몸 바쳐 희생했던 영탁을 아파트 대표로 선출하고, 외부인들의 아파트 거주 여부를 투표에 부칩니다. 바둑알로 투표를 진행했는데, 검은색 돌은 잔류, 흰색 돌은 방출의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투표 결과, 대부분의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을 방출하는 것에 동의했죠.
다음날 아침, 영탁과 주민들은 외부인을 아파트 앞으로 소집시킵니다. 그리고 저마다 몽둥이, 철장, 그리고 위성방송 안테나까지 들고 무장한 주민들이 벽을 세워 현관을 막아섭니다. 지팡이를 집은 영탁은 정중하게 외부인들은 밖으로 나가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날씨에 나가면 얼어 죽을 것이 명확한 상황. 외부인들은 순순히 나갈 생각이 없습니다. 심지어 국회의원이었던 사람은 뒷짐을 지고 나와 영탁에게 큰소리를 치는 상황. 소란이 발생하고, 외부인들은 아파트로 진입하기 위해 몸을 던집니다. 그러나 영탁이 외부인에게 머리를 몽둥이로 강타당한 후... 그는 피를 흘리며 외부인들에게 '당장 나가!'를 외치며 미친 사람처럼 몽둥이를 휘두릅니다. 어쩔 수 없이 아파트 정문을 통과해 지옥으로 걸어 나가는 외부인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입주민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앞으로 헤쳐나가게 될까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군상극을 좋아하는 분', '디스토피아 장르를 좋아하는 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을 좋아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장르를 기대하는 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인물을 보기 싫어하는 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싫어하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게 된 계기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병헌 = 모세 ? |
영화를 보다 보면 곳곳에 종교적인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곳곳에 십자가도 보이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문구도 보이며, 마지막으로 명화가 잠에서 깨어나는 장소도 무너진 교회 내부였었죠. 특히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인물의 본명이 '모세범'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성경을 참고해 작품이 만들어진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창세기전에 등장하는 선지자 '모세'의 이야기를 아시는 분이라면, 이병헌의 행적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나열하는 일들은 그의 행적과 모세의 이야기가 일치하는 부분들입니다.
1) 아파트에 거주하기 전에 김영탁을 죽임 - 모세 애굽 탈출 전 사람 살해
2) '우리 아파트가 선택받았다'는 연설 - 유대교 선민사상
3) 황궁 아파트에 규율을 세움 - 십계명과 율법
4) 지팡이를 들고 마른 한강을 건너가는 이병헌 - 홍해를 가르는 모세
5) 한강 너머에서 발견한 대형마트에서 환호하는 사람들 - 홍해를 건너고 모세를 찬양하는 백성들
6) 황궁 아파트 옆에서 물이 터져 나옴 - 바위에서 물이 쏟아져 모세를 향한 백성의 불만이 잠잠해짐
7) 도시 곳곳에서 터지는 불길 - 모세가 출애굽 시작할 때 신이 불기둥을 내려가야 할 길을 알려줌
8) 문 앞에 붉은 페인트로 칠함 - 재앙을 피하기 위해 문설주에 짐승의 피를 바름
9) 아파트가 외부인에게 습격당하고, 이병헌은 죽음을 맞이함 - 낙원에 들지 못하고 사망하는 모세
정말 아파트는 선택 받았는가? |
사람들은 아파트를 신성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세상이 몰락해 버린 재앙 속에서 홀로 꿋꿋이 서있는 온전한 건물인 아파트는 신이 선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입주민들은 그런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선택받은 인물들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지게 되죠. 그렇기에 입주민들은 천한 외부인들을 몰아내고, 그들만의 지상낙원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말이죠.
아파트 재정비 장면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세상이 멸망한 상황 속에서도 행복하다는 듯이 미소 짓는 주민들. 스스로 세울 규칙에 따라서 불만제기 없이, 교양 있게 행동하는 그들. 마치 자신들이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머릿속에 잠식한 상황. 그리고 외부인들이 시체를 파먹고, 건물 잔해 사이에서 거니는 모습을 보고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가감 없이 비하를 하는 모습은 그들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었죠.
그러나 외부에서 바라본 상황은 상당히 다릅니다. 외부인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진 아파트 주민들도 결국 음식을 얻기 위해 살인과 절도를 저질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생존을 위해 총구를 들이민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다음, 아파트 식구를 위협한 죗값을 치르게 했다며 정신승리를 하는 모습은 그들의 수준도 외부인과 별반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외부인들에게는 '아파트로 사람을 유인하고 잡아먹는다더라'와 같은 정반대의 소문이 돌고 있었죠.
상당히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아파트 내부와 외부의 관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요. 내부에서만 살았던 사람들은 세상물정에 대해 무지하고, 외부의 사람들은 내부의 사람들의 삶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두 세상의 배타성 때문에 유발된 상황이지만,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오히려 제목에 물음표를 던지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과연 황궁 아파트는 '유토피아'일까?라는 물음에 말이죠.
집단 속 인물들 |
황궁 아파트에는 절대적인 불문율이 존재합니다. 아파트를 위협하는 행동을 한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결한 외부인으로부터 성스러운 아파트를 마땅히 보호해야 하며, 이를 훼손하거나, 봉사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처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황궁 아파트'라는 이름 아래에 의견을 자유로이 낼 수 없는 통제된 집단이 형성된 것이죠.
그렇기에 영화에서 박보영 배우가 연기한 '명화'라는 인물이 다소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선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어 추위에 벌벌 떨던 외부인들 집으로 들여주었으며, 자신의 배급도 나눠주며 외부인들이 죽지 않도록 적극 도왔습니다. 이와 같은 행보 때문에 민성과 본인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까지 몰리지만, 그녀는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습니다.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은 체제에 적응하는 인물입니다. 명화를 지키기 위해, 유토피아를 수호하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외부인을 살해하기도 할 정도로 양심의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하죠. 게다가 명화가 외부인을 몰래 도와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릎을 꿇으며, 외부인을 숨겨주고 있던 입주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생존을 보장받았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충성했지만, 정작 이병헌이 입주민이 아닌 것을 알았을 때 크게 상심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병헌이 연기한 '모세범'이라는 캐릭터도 흥미롭습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표로 나서서 목숨 바쳐 싸웠으며, 목숨 바쳐 식량을 얻어왔으며, 영탁이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그의 치매 걸린 할머니도 정성스럽게 돌봤습니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상황에서 리더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던 인물. 결국 그도 아파트 집단의 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영화의 끝에는 외부인이 아파트로 침입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당연하게도 외부인들이 아파트 주민들을 살해할 때, 그들의 의견은 묻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했던 리더, 모세범의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살고 싶었고, 명화를 지키고 싶어 몽둥이를 집어 들었던 민성의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외부인을 도왔던 명화의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황궁 아파트 주민'이며, 척결대상일 뿐입니다.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 당당히 남들에게 추천할만한 수작이 오랜만에 나온 것 같습니다. 클리셰로 가득 찼던 암흑의 시기가 지나가고, 작품성을 혼재한 상업영화가 다시 동을 트는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가능하시면 영화관에 걸려 있을 때 보시는 걸 추천드리고, 아쉽게 못 보신 분이라도 IPTV로 올라왔을 때 한 번쯤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광기로 세워진 집단, 당신의 의견은 중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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