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치사 사건',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과 이를 세상에 밝힌 사람들의 노고를 담은 '1987'이라는 작품입니다. 한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을 빼어난 완성도로 만든 훌륭한 작품이죠. 잊히면 안 될 역사를 체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1987',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영화 소개 (스포일러 x) |
"그런다고 세상이 바껴요?" - 극 중 연희의 대사 |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느와르, 미스터리, 시대극, 범죄, 액션, 정치
감독 : 장준환
주연 : 김윤석(박 처장), 하정우(공안부장), 유해진(한병용), 김태리(연희), 박희순(조반장), 이희준(윤상삼 기자), 유승목(유 과장), 현봉식(박계장)
상영 시간 : 129분
영화는 전투환 대통령이 치안 본부를 방문해 북괴 간첩 검거 유공자에게 훈장을 달아 주고 노고를 치하하는 뉴스 영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학생 운동이 간첩의 사주를 받아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알리고 있었죠.
한 응급차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긴급히 들어갑니다. 오연상 의사는 들어가자마자 의식 없는 학생의 동공을 확인하고, 청진기로 맥박을 확인해 보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살리라는 수사관들의 압박에 각종 약물을 주입하지만, 그는 다시 숨을 쉬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들은 박 처장은 조용히 일을 처리하라고 시키죠.
해당 사건은 최 검사, 서울지검 공안부장에게 전달됩니다. 모처럼 양주를 선물로 받은 공안부장은 잔뜩 신이 나 술을 애지중지하며 보관하죠. 짜장면과 함께 한 잔 하던 최검사는 치안 본부에서 작성된 사망 보고서를 받게 됩니다. 22살 청년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사실과, 부모 동의도 없이 화장하려고 검사의 승인을 받아 내려는 찝찝한 상황. 공안부장이 도장 찍는 것을 망설이자, 안보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며 그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절차대로 아침에 부검하고, 화장 진행하라는 공안부장의 태도에 물러서게 됩니다.
공안부장은 남영동에서 조사받던 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동료 검사들에게 허심탄회 털어놓습니다. 검사들은 최 검사의 안위를 걱정하지만, 그는 물러섬이 없었죠. 이를 들은 동료 검사는 친한 기자에게 남영동에서 서울대생이 죽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털어놓습니다. 이미 소식이 일파만파 퍼졌겠거니 싶었던 것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금시초문인 사건이었죠. 거대한 소식을 접한 기자는 곧바로 공중전화로 달려가 기사로 보도합니다. 해당 신문사는 보도지침을 어겼다는 죄로 수사를 받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외부로 전해지자, 정부는 공식 성명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학생이 사망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알려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어이없는 대답으로 일관하게 됩니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기자들은 집요하게 질문합니다. 경찰 청장은 질문에 당황해 사망을 진단한 중대 병원 의사의 이름을 말해버립니다. 이에 기자들은 곧장 중앙대 병원으로 달려가죠.
과연 기자들은 박종철 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어떤 파장을 끼치게 될까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분',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을 좋아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를 싫어하는 분', '복잡한 영화를 싫어하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게 된 계기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 사건 개요 |
영화에서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언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는 쉽게 정리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건의 시초부터 마지막까지 연도별로 쭉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87년 1월 14일 :
1) '박종철' 학생이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 고문으로 인해 사망.
2) 가해자는 조한경(고문 지휘), 강진규(다리), 황정웅(왼팔), 반금곤(오른판), 이정호(머리).
3) 중앙대학교 오연상 의사가 1시간 동안 응급처치를 했으나 깨어나지 않음.
4) 도착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망진단서'가 아닌 '사체검안서'를 작성. 사인은 '미상'으로 기록.
5) 오연상 의사는 일반 병원 응급실은 시신을 받을 수 없는 법을 근거로 들어, 박종철 시신을 국립경찰병원으로 보냄.
6) 이 사건 이후, 오연상 의사는 경찰 셋에게 지속적인 감시를 당함.
7) 경찰은 시신을 화장하려고 했지만, 공안부장 최환 검사는 절차대로 부검을 지시.
1987년 1월 15일 :
1) 아침 티타임 때, 공안부장이 팀원들에게 남영동에서 학생이 사망했다고 알림.
2) 검사 이홍규 과장과 친한 신성호 기자는 특종 때문에 대검찰청을 방문했다가, 해당 소식을 접함.
3) 중앙일보에서 해당 사건을 석간신문으로 보도. 내용은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
4) MBC도 이어 단신으로 해당 사건을 보도.
5) 동아일보 기자가 화장실에 숨어 오연상 의사에게 정확한 사인을 캐물음.
5) 경찰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박종철 군의 사망 원인이 심장마비라고 발표. '책상을 닥 치니, 억하고 쓰러지더라'라는 허무맹랑한 발언도 해당 회견에서 나옴.
1987년 1월 16일 :
1) 박종철 유골을 벽제화장장에서 화장, 임진강에서 산골.
2) 동아일보가 오연상 의사와 박종철 삼촌의 증언을 토대로 단순 사망이 아닐 것이라 보도.
3) 치안본부 특수수사대 결성. 사망 사건 조사 시작.
1987년 1월 17-18일 :
1) 박처장이 조한경, 강진규 경찰에게 책임을 질 것을 요구. 보답으로 가석방과 현찰 1억씩 지급을 약속.
1987년 1월 19일 :
1) 동아일보에서 보도지침을 어기고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사망했다고 보도. 고문 근절 특집 기사 대대적 보도.
2) 특수수사대 조사 결과 발표. 조한경과 강진규 경찰의 물고문으로 목 부분이 욕조에 눌려 경부압박으로 사망했다고 발표.
1987년 1월 24일 :
1) 특수수사대 추가 발표. 전기고문은 없었고, 가해자는 경찰 둘이 끝이라고 축소 발표.
1987년 1월 19일 - 5월 17일 :
1) 교도소에 갇힌 경찰 둘은 매일 슬피 울었음. 다른 가해자도 있지만, 자신들만 책임을 지고 있는 처지가 억울했기 때문.
2) 수감 중이었던 이부영 해직기자가 교도관에게 사건이 축소되었음을 전해 들음.
3) 이부영 해직기자는 내용을 면밀히 작성하여 외부로 전달.
4) '이부영 - 한재동 교도관 - 전병용 퇴직 교도관 - 재야 운동가 김정남 - 함세웅 신부'의 과정을 거쳐 세상 밖으로 도달.
1987년 5월 18일 :
1)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김승훈 마티아 신부의 폭로로 가해자 셋이 더 있음이 알려짐.
1987년 5월 21일 :
1) 정구영 서울지검 검사장이 밝혀지지 않았던 가해자 셋이 더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
1987년 5월 22일 :
1) 동아일보에서 경찰의 사건 은폐와 가담자 축소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도.
2) 경찰은 구속되지 않은 가해자 셋과 이를 은폐한 책임이 있는 박처장 및 관련 인물을 구속.
여기까지가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박종철 치사사건의 타임라인입니다.
영리한 각본 |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계란에 바위를 던져도 계란만 깨질 뿐, 바위는 손상 하나 없이 말끔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강력한 권력, 힘에 도전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력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말도 존재합니다. 바위에 물방울이 오랫동안 떨어진다면, 표면을 깎아 구멍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말도 있죠.
영화 '1987'은 바위를 깨부수는 물방울의 이야기를 영리한 각본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박 차장이라는 바위와 이에 대항하는 소시민의 대립을 훌륭하게 묘사했죠. 영화는 '상호작용'을 사용해 힘의 격차와, 물방울이 결집되는 과정을 훌륭히 그려냈습니다. 실로 영리하지 않을 수 없는 각본이죠.
첫 번째로 캐릭터들의 힘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주었습니다. 보통 사람의 권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직업과 직위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직함으로 인물의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위엄을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관객이 당대의 박 차장 권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도 하며, 알고 있더라도 다른 기관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권력을 쥐고 있는지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계속해서 박 차장과 시민들의 마찰을 꾸준히 보여줍니다. 예시로 박 차장은 검사 보안부장에게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권력이 닿지 않는 검사 직종이기도 하고, 법을 무시하고 행정절차를 밟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외압을 가해 검사에게 절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기자는 박 차장의 어이없는 대사를 받아 적는 위치이며, 교도관은 박 차장에게 고개를 수구리며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위치이며, 김태리는 그의 말 한 마디면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소시민입니다. 이처럼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한 바위, 박 차장이라는 인물을 묘사하며 약자의 연대 없이는 이를 공략하기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죠.
두 번째로 상호작용을 통해 약자들의 연대 과정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잘 그려냈습니다. 소시민들의 결의가 한 곳에 모이는 이유는 단순히 정의구현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며 신경 끄는 사람도 있으며, 오히려 이득을 취하고 자하는 인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사람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태도도 민주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시민이 결집할 수 있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불의로 인해 피해를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박 차장에게 대항하는 이유가 참 다양합니다. 검사는 이전에 성폭행 고문 사건을 덮어주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받고 경찰에게 칼을 갈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교도관들은 강력해진 군부정권의 강압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실제로 투옥된 민주화운동가들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던 이유였습니다. 연희는 데모는 일절 관심 없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5.18 관련 자료와 삼촌이 투옥되자 생각을 바꿨습니다. 말 그대로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한 소시민의 각성을 합리적으로 그려내었습니다.
거대한 바위를 부수어낸 작은 물방울들의 연대. 압도적인 권력 차이와 연대의 이유를 꾸준한 상호작용을 통해 영리하게 그려낸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 작품은 하마터면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할 뻔했습니다. 좋은 퀄리티의 각본이었지만, 민감한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었기에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만다행으로 강동원 배우가 출연을 결심하면서, 여러 배우들도 동참, 결국 제작에 이르게 되었죠. 이렇게 보니, 영화의 제작과정도 영화의 내용과 맞물려 있는 듯한 기분이 드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거대한 바위를 부수어낸 작은 물방울들의 연대"
영화 추천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정각에 업로드됩니다.
'보고 추천하는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추천] 모노노케 히메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걸작 (Princess Mononoke, 1997) (2) | 2023.09.04 |
---|---|
[영화 추천] 설국 열차 - 빙하기 속 인류의 마지막 생존 열차 (Snowpiercer, 2013) (4) | 2023.09.01 |
[영화 추천] 더 레슬러 - 레슬링에 심장을 바친 랜디 (The Wrestler, 2008) (3) | 2023.08.28 |
[영화 추천] 노트북 - 우리의 사랑을 막을 것은 세상 무엇도 없어요 (The Notebook, 2004) (0) | 2023.08.25 |
[영화 추천] 오펜하이머 - 원자폭탄의 아버지 (Oppenheimer, 2023) (0) | 2023.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