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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천] 잠 - 매일 밤 낯선 사람이 깨어난다 (Sleep, 2023)

무비서포터 2023. 9. 13. 00:00

 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제자, 유재선 감독의 탁월한 데뷔작 '잠'입니다. 극 중 정유미, 이선균 배우가 부부로 등장하며, 남편이 몽유병을 앓고 있어 밤마다 해괴한 행동으로 정유미를 위협하는 스릴러입니다. 제한된 공간, 신뢰할 수 없는 남편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극한의 서스펜스를 뽑아내고 있으며, 배우의 열연이 빛을 발한 작품입니다. 올 가을 한국영화 최고의 공포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영화 '잠', 추천드립니다.

 


 

영화 소개 (스포일러 x)

 

 

잠 예고편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

- 극 중 부부의 마음가짐

 

장르 :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서스펜스, 느와르

감독 : 유재선

주연 : 정유미(수진), 이선균(현수), 김근순(해궁할매), 김국희(민정), 이경진(수진모), 윤경호(의사)

상영 시간 : 94분

 

 영화는 현수의 코골음 소리와 함께 시작합니다. 몸을 뒤척이던 수진은 현수가 자리에 없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주위를 둘러보자 현수가 침대 모서리에 앉아 마루를 바라보고 있었죠. 지금껏 보지 못한 남편의 모습에 수진은 당황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뭐 하냐고 묻습니다. 이에 현수는 '누가 들어왔어'라는 소름 끼치는 답변을 하고 침대에 쓰러져버리죠. 그리고 열린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쿵!' 소리. 수진은 깜짝 놀라 겁에 질립니다. 현수를 깨워보지만, 미동조차 없이 곤히 자는 남편. 수진은 그런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다시 들려오는 쿵! 소리. 수진은 조심스레 마루로 나가 소리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하죠. 알고 보니 베란다 문틈에 슬리퍼가 끼워져 있어 바람에 쿵! 쿵! 거리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수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잠에 들려고 하는데... 김치냉장고 위에서 무언가를 느낍니다. 수진은 조심스레, 김치 냉장고로 다가가 위에 놓인 물건을 치우는데... 그곳에서 튀어나오는 반려견 '후추'. 수진은 안심하며 후추를 데려갑니다.

 

 현수는 데뷔한 지 10년이 넘은 배우입니다. 오늘도 있을 촬영 때문에 분주히 준비하며 밖으로 향하죠. 잠시 뒤에 울리는 현관 초인종 소리에 임신한 수진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봅니다. 그곳엔 처음 보는 아줌마가 마카롱을 들고 찾아와 있었죠. 그녀는 최근 아래층으로 이사 온 사람으로 최근 일주일 간 소란스러웠던 위층에 항의차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비명 소리에 잠을 이루기 힘들다며 항의하지만, 수진은 어제 있었던 자신의 비명 소리를 제외하고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죠. 그러나 이웃과 담을 세우는 것은 좋지 않으니, 그저 주의하겠다고 답하며 일단락합니다.

 

 수진은 회사에서 퇴근하며 현수의 차량에 탑승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새로 이사 온 아주머니에 대한 얘기를 꺼내죠. 일주일 내내 소음이 들렸다고 말하는 아주머니가 민감하다는 둥, 전에 살았던 할아버지가 더 심했다는 둥 여러 얘기를 나누죠.

 

 그날 밤, 현수는 많이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집니다. 그런 현수의 모습을 침대에서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수진은 그의 이상한 행동을 포착합니다. 마치 얼굴이 가렵다는 듯이 왼손으로 벅벅 긁는 모습. 이러다가 흉이라도 생길까 수진은 그의 손을 붙잡으며 행동을 막아봅니다. 그러자 현수는 더 이상 긁지 않고, 얌전하게 잠을 잡니다. 수진은 그제야 안심하고 잠에 들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수진은 현수의 오른쪽 뺨에 생긴 굵고, 깊은 상처를 보고는 비명을 지릅니다. 큰 일이었습니다. 오늘 촬영이 있는 현수가 얼굴에 흉이 생긴다면, 배역을 잘릴지도 모르는 상황. 수진이 급히 피로 범벅된 그의 오른뺨에 약을 바르며 처방해 보지만, 깊게 파인 상처가 나아질 리가 없죠. 어쩔 수 없이 밴드를 붙이고 촬영장으로 향하는 현수. 그리고 한숨 쉬며 그를 보낸 수진은 자신도 출근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제야 들어오는 집안 곳곳 널린 핏자국에 수진은 의아함을 느끼죠. 심지어 반려견도 보이지 않아 집을 이곳저곳 살피던 수진은 침대 모서리에 꽁꽁 숨어있는 후추를 발견합니다. 후추의 이름을 부르며 밖으로 나와보라고 하지만, 그곳엔 손바닥 모양의 핏자국이 남아있었습니다.

 

 과연 그날 밤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현수에게 발생한 몽유병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서스펜스 스릴러를 좋아하시는 분', '예측할 수 없는 전개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 '두 배우의 멋진 열연을 보고 싶은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잔인한 장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 '다소 작위적인 전개도 이해할 수 있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게 된 계기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장치들

 

 

 저는 이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 몽유병인지, 빙의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함으로부터 기인한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유재선 감독은 이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양쪽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배치해 두었는데, 이는 상당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영화에서 나열되는 증거의 성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몽유병으로 해석되는 증거', '빙의로 해석되는 증거',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함유한 중의적인 증거'로 구분되죠.

 

 몽유병으로만 해석되는 증거는 뇌파자살 소동이 있습니다. 분명한 REM 수면 상태로의 진입을 보여주는 뇌파는 현수가 몽유병을 앓고 있다는 증거로 채택될 수 있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겪는 REM 수면 상태가 단순 몽유병인지는 불분명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빙의로 해석되는 증거는 아래층 할아버지의 사망 날짜와 현수에게 증상이 발현된 시기가 일치하는 것, 부적을 침대 아래에 붙였을 때 잠잠하게 하루가 지나간 것이 있습니다. 이것도 물론 우연의 일치라고 반박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위의 증거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증거들은 양가적 해석이 가능한 증거들입니다.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몽유병으로 해석할 때, 빨간색 글씨는 빙의로 해석될 때입니다.

 

1) 내 몸에 들어왔어 - 출연 작품 대사 / 할아버지 영혼이 빙의

2) 몸을 긁는 행동 - 몽유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 / 빙의 초반엔 몸이 가려움

3)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꺼내 먹음 - 역시나 몽유병 환자의 대표적인 증상 / 날 것을 먹는 것은 기력을 회복하기 위함

4) 개를 죽임 - 몽유병으로 발생한 비극 / 소음에 시달리던 할아버지의 복수 실현

5)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음 - 약한 약을 처방해서 효과가 없었음 / 초자연적인 현상이니 약이 먹히지 않음

6) 잠긴 화장실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함 - 소변을 보고 싶었던 것 / 아이를 살해하고자 했던 것

7) 50일 동안 REM 수면 상태 없이 쾌적한 수면을 취함 - 바꾼 약이 효과가 있었기 때문 / 굿과 문신이 효과가 있었기 때문

8) 현수가 마치 아래층 할아버지처럼 행동함 - 빙의를 맹신한 수진을 위해 연기 / 할아버지 영혼이 정말로 몸에서 떠나감

9) 모든 일이 끝나고 현수가 곯아떨어짐 - 피곤했던 현수가 곯아떨어짐 / 할아버지 영혼이 떠나지 않음

 

 크게 9개의 증거들로 묶어서 볼 수 있겠네요. 정답은 없습니다. 어차피 영화에서도 명확하게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모든 증상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나열되는 명확하지 않은 증거들 때문에 관객들은 끝없이 의심하게 만들게 만든 것이 상당히 탁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유발되는 서스펜스

 

 

 우리는 낯선 사람을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밤중에 낯선 사람과 같이 걷는 길거리는 다소 무섭게 느껴지죠. 반대로 일면식이 있는 사람은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선 어떤 성격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부부 관계라면 살아생전의 모든 경험과 그리고 자신의 생각들을 대부분 공유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신뢰는 남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굳고, 깊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낯선 사람으로 변해버린다면 어떨까요? 반평생을 함께해 온 인생의 동반자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영화는 그 지점을 명확히 뚫고 지나갑니다. 1장에서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요인은 바로 현수에게 있습니다. 현수는 잠에 들면 헛소리를 내뱉거나, 피부를 심하게 긁거나, 개를 살해하는 이상행동을 보여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진은 현수가 코를 골며 자는 순간을 가장 두렵게 받아들이게 되죠. 반대로 3장에서의 서스펜스는 수진에게서 유발됩니다. 남편이 빙의했다는 생각에 집안을 온통 부적으로 채워 넣는다던가, 아랫집 개를 죽여 냉동실에 넣는다거나, 아랫집 아줌마를 납치해 위협하는 행동을 보이죠. 이젠 반대로 현수가 수진을 두려워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초장과 막장의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요인은 같으나, 인물이 달라진 상황.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전적인 시도는 부재한 작품이라 다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서스펜스 장르물로써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고, 각본도, 연기도 한치 부족함이 없는 수작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기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되도록이면 영화관에 걸려있을 때, 극장에서 관람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장르극을 모범적으로 만든다면"

 

영화 추천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정각에 업로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