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한 남자'입니다. 결혼했던 남편의 이름이 알고 보니 '타니구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아내가 변호사에게 조사를 의뢰하는 작품입니다. 일본의 '인간 증발' 문화를 반영한 작품이며, 사회 비판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예상보다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어서 예상외로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의 진짜 정체를 밝혀내는 미스터리 추리극을 보고 싶은 분들에게 영화 '한 남자', 추천드립니다.
영화 소개 (스포일러 x) |
"지금부터 당신의 죽은 남편을 'X'라 부르겠습니다" - 극 중 아키라의 대사 |
장르 : 범죄, 로맨스, 멜로, 스릴러
감독 : 이시카와 케이
주연 : 츠마부키 사토시(키도 아키라), 안도 사쿠라(타니구치 리에), 쿠보타 마사타카(타니구치 다이스케)
상영 시간 : 122분
영화는 비가 오늘날, 다이스케가 리에의 문방구로 들어오며 시작됩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를 엄선해서 고르고 계산대로 다가옵니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가게의 불이 나가며 어두워지죠. 리에는 당황하지만 다니스케가 침착하게 두꺼비집 위치를 그녀에게 묻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붙잡고 두꺼비집으로 향하는 리에, 그러나 두꺼비집은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놓여 있었죠. 두꺼비집을 올리지 못해 끙끙대는 리에를 본 다이스케는 친절히 다가가 두꺼비집 전원을 올려줍니다. 문방구는 다시 불이 들어왔고, 다이스케는 조용히 자리를 뜹니다.
다이스케는 벌목 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나무 한쪽에 도끼로 삼각형 모양의 홈을 패고, 다른 쪽에 전기톱을 가져다 대어 하는 작업 방식으로 진행되죠. 무게 중심을 잃은 나무는 도끼로 팬 방향으로 서서히 쓰러지게 됩니다. 다이스케는 곧장 일을 잘 배웠습니다. 일을 마친 다이스케는 쉬는 시간에 틈틈이 그림을 그립니다.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리에의 아들, 유토가 뛰어노는 것을 그림에 담았죠.
다이스케는 리에의 가게를 다시 찾습니다. 그리곤 지금까지 그렸던 그림을 보여주며 식사 데이트를 신청하죠. 이 데이트는 리에의 과거를 고백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유토를 낳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던 리에의 가족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잊을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떠나간 남편을 상기한 리에는 감정이 복받치는지,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되죠. 그러나 다이스케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아줍니다.
다이스케와 리에는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됩니다. 다이스케에게 유토는 자신의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아들이지만, 친아들처럼 끔찍이 아끼며 장난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게다가 이 가족엔 새로 딸까지 생겨 행복은 배가 되었죠.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교를 땡땡이치고 아버지 작업 현장으로 놀러 간 아들. 다이스케는 유토를 다른 분에게 맡기고 작업으로 올라갑니다. 도끼로 삼각형 홈을 패고, 전기톱으로 나무를 벤 순간... 넘어지고만 다이스케는 쓰러지는 나무를 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다이스케의 장례식이 열리는 리에의 집에 다이스케 유족이 찾아옵니다. 그는 다이스케의 형, 쿄이치. 부모님에게 온천을 물려받은 장남이었죠. 그는 들어오자마자 다이스케가 가문의 골치였다는 험한 말을 내뱉으며, 여기에서도 피해를 주었다며 그의 죽음이 수치스럽다는 듯 말하죠. 어찌 되었든 향을 피우러 분향소를 찾았는데... 쿄이치는 다이스케 사진이 어딨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리에는 다이스케의 사진을 친절히 가리키지만, 쿄이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답하죠. 쿄이치가 보여준 사진을 보았을 때, 단순히 시간이 흘러 모습이 변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리에와 결혼한 다이스케는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진짜 다이스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살펴보고 싶은 분', '미스터리 한 사건 수사물을 좋아하는 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정적인 전개를 싫어하는 분', '생각이 필요한 영화를 싫어하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게 된 계기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 증발 |
일본엔 인간증발(蒸発, Jouhatsu) 풍조가 존재합니다. 말 그대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으로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는 것과 같은 불명예스러운 일을 겪은 사람이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고향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을 말하죠. 이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미국, 중국,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도 일어나기는 하나, 그 정도가 심한 것은 일본이라고 합니다. 이 현상의 기원은 1960년대에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보내던 사람들이 도망치면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위와 같은 사유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를 도와주는 브로커(Yonige-ya)도 존재합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주고, 새로운 터전에 자리 잡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가격은 대략 $450-2600 선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사람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요? 한국에서는 주민등록제로 신원 조회를 실시하면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손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지문을 등록하기 때문에 스스로 개명한다고 해도 등통 나기 마련이죠. 그러나 일본에는 주민등록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개인정보 조회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어, 본인을 제외한 가족, 친지가 그 사람의 신상 정보를 확인할 수도 없죠. 그래서 증발한 사람들은 새로운 터전에서도 편하게 직장을 구하거나, 은행을 이용하는 등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족들은 속이 갑갑하겠지만요. [1], [2]
오배송된 죄책감과 입증 책임 |
타니구치는 거울을 볼 때마다 혐오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살인자 아버지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똑같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친구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아버지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에게 날아오는 남들의 손가락질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 게다가 타니구치는 그 손가락질에 저항 없이 굴복하고, 순응하고 맙니다. 범죄자의 자식인 자신은 남들처럼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죠. 복싱을 배우는 이유도 상대 선수가 혐오스러운 자신의 육신을 마구 두들겨 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타이틀전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타니구치에게 범죄자 아들이면 어떠냐며 해코지하는 코치의 모습을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남들은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가져보았으면 하는 기회이지만, 그걸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행동이 멍청하게끔 느껴지게 만드는 일갈이었죠. 이 기점으로 타니구치는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남들처럼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삶이요. 그러나 현재의 신분으로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브로커를 만나 신분을 세탁하고 리에와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아키라는 자이니치(재일 한국인)입니다. 자이니치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핍박과 멸시를 받아왔죠. 아키라도 차별을 받을 수 있었지만, 능숙한 위장으로 자이니치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며 살아가고, 변호사로서 성공,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었죠.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아키라이지만, 마음속에 깊게 파인 자신의 정체성과 이런 정체성을 혐오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에 대한 갈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하고 있지만, 자신이 일본을 더럽히는 암적인 존재로 매장하는 사회가 원망스럽고, 좌절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키라에게 타니구치 조사는 큰 의미를 가집니다. 타니구치가 자신의 정체를 위장한 까닭은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감추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밀어내는 편협한 사회에서 숨 쉴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음을 입증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처럼 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아키라는 타니구치는 일평생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 사실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죠. 리에와 유토에게 자신의 남편이, 아버지가 범죄자가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정체를 감추고 살고 있던 아키라 본인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타니구치의 사례로 입증할 수 있으니까요.
[1] Wikipedia - Jouhatsu : https://en.wikipedia.org/wiki/Jouhatsu
[2] BBC NEWS 코리아 - 그들은 왜 '증발'할까? ...일본의 자발적 실종자를 돕는 사람들 :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7831389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편협한 사회 속에서 오배송된 죄책감과 입증책임"
영화 추천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정각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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