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며, 칸 영화제 경쟁 진출작으로 유명한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개봉했다는 소식에 영화관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영화관에서 나왔을 때 들었던 생각은... 간만에 상당히 어려운 영화가 나왔구나 싶었습니다. 영상미는 역시나 훌륭합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미장센, 구도가 인상적으로 연출된 영화이며 그의 완벽함에 혀를 내 두르고 올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난이도가 있었습니다. 1시간 4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무수히 많은 사건과 대사가 스쳐 지나가는데, 그 분량이 어마무시할 정도로 많아 일회차로 모든 내용을 종잡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가 주는 난해함도 한 가지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가 제시되는데, 각각의 이야기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각기 따로 노는 듯한 이야기가 특정한 키워드나 메시지로 연결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난해함이 유발됩니다.
다만 난해함과 동시에 호기심도 유발되기도 합니다. 거대한 세트장을 지어두고,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현하는 작품인데, 의미 없이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보는 내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단순하거나, 얕은 의미를 함유한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 반나절의 고민을 통해 난해하게 펼쳐진 사건 도막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고리를 찾은 것 같아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일회차 감상평이기 때문에 틀린 부분도 있고, 곡해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의 인식 |
영화 이해를 열어주는 키워드는 별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죽었을 때 별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한 지금은 별이란 표면 온도가 5천 도가 넘는 핵융합의 산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실이며,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뜬금없이 외계인이 등장합니다. 저 먼 우주 어딘가에서 날아온 외계인은 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시작하죠. 아이들이 목성에 외계인이 살고 있는지, 저 별이 외계인의 집인지 궁금해하는 모습.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우주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는 마치 미래의 사람들이 가질 별에 대한 인식과도 같아 보입니다.
즉, 사람들이 가지는 인식은 절대적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발생하는 사건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게 됩니다.
불완전한 규정 |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예시로 끊어져 있는 다리나, 핵 실험이 발생하며, 정체 모를 경찰차가 오 다니는 곳. 그중 인상 깊게 느껴졌던 것은 별자리를 정의하는 장면과 크레이터를 은유하는 장면들입니다.
별자리의 경우에는 3차원으로 펼쳐진 우주 공간에서 날아온 빛을 인간이 2차원으로 인식해 평면상에서 그림을 그린 결과물입니다. 어떤 빛은 수억 년 전에, 어떤 빛은 비교적 최근에 발생했을지도 모르고, 어떤 빛은 지구 가까이, 어떤 빛은 우주 끝에서 다가오고 있는 빛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동일한 이차원 평면상의 점으로 규정했습니다. 여기서 이름을 붙여 사자자리, 천칭자리와 같은 명칭으로 불러왔습니다. 이와 같은 규정 방식이 정확한지도 모르겠고, 절대적인 규정방식 또한 아닙니다. 예시로 우드로의 어머니는 자신의 편의대로 국자자리와 같은 이름으로 별자리를 칭한 것을 보면 그렇죠.
크레이터를 다루는 방식 또한 영화에서 끝없이 의심을 줍니다. 소행성에 의해 5천 년 전에 발생한 크레이터가 정말로 소행성에 의해 발생했는지에 대해 말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핵실험의 여파일 수도 있고, 어기의 자녀들이 엄마의 유골을 사막 구덩이에 파묻은 것처럼, 외계인이 와서 파낸 거대한 구덩이일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UFO와 비슷한 크기의 크레이터는 어쩌면 그들의 주차장이었을지도 모르죠. 소행성은 소행성이 아니라, 고장 난 UFO 부품일지도 모르고요.
나는 누구인가? |
인간은 끝없이 사회와 교류하며 자아를 결정짓습니다. 교류를 통해 사회란 어떤 곳이고, 그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규정할 수 있는 확신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아에 대한 믿음을 쥐어줄 수 있는 사회가 불완전하게 느껴진다면,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혼란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밋치를 연기한 배우는 기차에서 총 세 개의 편지를 받습니다. 화났을 때, 슬퍼할 때, 그리고 온전한 상태일 때의 편지들이죠. 각 편지의 내용은 다릅니다. 두 편지에선 그녀는 나쁜 배우이고, 한 편지에서는 최고의 배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동일한 사람임에도 상황에 따라 그녀를 규정하는 것이 달라지는 이상한 상황.
밋치라는 캐릭터 또한 특이합니다. 사회에서는 그녀가 코미디 배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배역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욕조에서 사망한 배역이었죠. 사회가 규정하는 그녀와 본인이 생각하는 그녀가 일치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 과연 밋치라는 캐릭터는 어떤 캐릭터일까요?
어기 배역을 맡은 배우는 끝까지 극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국 작가를 찾아가 묻죠. 자신을 도저히 극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배역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어기 배역에게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격려합니다. 실제로 그가 연기를 잘하고 있기도 하죠. 배역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자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배역 연기에 적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을 확인하는 법 |
불완전하게 정의된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다시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인식이, 통념이, 문화가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해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늘 내기를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툭하면 사람들과 내기를 합니다. 어떤 내기인지 종류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신은 그 사람보다 나은지, 나쁜지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토스터기에 자신의 손을 대는 어기 또한 아픔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예시라 볼 수 있겠죠.
꿈은 무엇일까? |
3막의 마지막엔 '같은 꿈을 꾼 각기 다른 인물들이 잠에서 깨어나 행동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작가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배우들을 한 곳에 모아 연기를 펼쳐달라고 하죠. 실제 3막에서 잠에서 깨어난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시 외계인이 찾아와 소행성을 반납한 순간에 구금에 저항하며 사람들이 각기 행동하는 것이 가장 가까울 것 같네요.
그렇다면 꿈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사회의 통념, 신념, 문화 등 여러 요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과 상호작용하며 자아를 규정하게 되고요. 우리는 앞서 언급한 요소들이 시간이 지나거나, 외계인을 만나는 특정한 사건을 겪으면 다시 재정의 될 요소임에도 그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우리의 자아는 굳건하다는 꿈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죠. 그 꿈속에서 우리는 소속감과 효용감, 혹은 자신의 가치를 정의하며 평온하게 살아가게 되죠.
여기서 군대는 사회적 인식, 통념과 어느 정도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것들. 통념에 자아를 맞추어야 하지만, 결국엔 바뀔 통념이기도 하죠.
그래서 통념이라는 꿈에서 벗어나, 자아에 대해 계속 묻는 것이 영화의 이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꿈에서 깨기 위해선 잠에 들어야 한다 |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영화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잠에 드는 것이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꿈에 빠지는 것이 지양돼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꿈에 빠지는 게 지향되는 상황이죠.
사실 자신의 불완전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매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긴 합니다.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하죠.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지식, 통념을 이용해 식견을 넓히며, 본인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외치는 순간이 지나야 만, 결점이 존재하는 사회와 본인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이죠.
이 메시지가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제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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