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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천] 비밀의 언덕 - 꼭 솔직할 필요는 없다 (The Hill of Silence, 2023)

무비서포터 2023. 7. 24. 00:00

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비밀의 언덕'입니다. 작년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은 작품으로, '이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영화를 보고 온 소감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재밌습니다. 생각보다 흥미롭고, 내포하는 메시지도 마음에 와닿는 영화였습니다. 차기 작품이 기대되는 한국 감독이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요. 숨기고 싶은 비밀을 가진 한 아이의 마음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 '비밀의 언덕'. 여러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영화소개 (스포일러x)

 

 

비밀의 언덕 예고편

 

"저에게 가족은 물음표에요"

- 극 중 명은이 작성한 글

 

 

장르 : 드라마

감독 : 이지은

주연 : 문승아(명은), 임선우(애란), 장선(경희), 강길우(성호), 장재희(혜진)

상영 시간 : 122분

 

  이야기는 명은이가 문방구에서 선생님 선물을 챙기며 시작됩니다. 처음엔 금색 별이 좋을 것 같아 택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어 분홍색 별을 가지고 돌아가죠. 명은은 선물에 함께 넣을 편지도 씁니다. 상담할 때 아이들이 있는 교실이 아니라, 상담실로 가서 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작성하죠.

 

 그날 밤, 명은 가족의 저녁 식사는 대게. 다들 맛있게 대게 속살을 발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죠. 그때, 티비에서 방영되는 불우이웃 돕기 방송을 본 명은은 전화를 걸어 후원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엄마 경희는 명은의 전화를 막죠. 왜냐하면 티비에서 방영되는 가족들보다 본인의 처지가 더 가난했었다며, 자신만큼 노력했으면 부자 됐을 사람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아빠가 펑펑 돈 쓰는 것을 잔소리하는 엄마. 아빠는 머쓱해하며 계속 식사를 합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명은의 오빠가 부모님에게 가훈을 묻습니다. 당황한 아빠는 우리 집 가훈은 없다고 말하고, 엄마는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라는 매정한 말을 하죠.

 

 다음날, 명은의 담임 선생님 애란은 분홍색 옷차림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 학교로 들어옵니다. 대신 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교장선생님은 '버스가 고장 나셨다면서요?'라는 센스 있는 말로 담임 선생님을 보호해 주고, 자리를 비켜줍니다. 애란은 숨을 고르고, 약속했던 상담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명은이 올려둔 선물과 편지는 읽어보지 못한 채, 반에서 상담을 시작하는 애란. 학생 하나, 둘, 상담을 마무리하고, 명은이 차례가 다가왔습니다. 자신 차례임을 눈치챈 명은은 두통 때문에 양호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하지만, 담임은 그렇게 아파 보이지는 않는다며 상담하고 가라고 말합니다. 결국, 명은은 반 앞에서 상담을 진행합니다. 담임은 가족 관계, 부모님 직업 등을 묻습니다. 이에 명은은 아버지는 회사원, 어머니는 가정주부라고 답하죠.

 

 하교한 명은은 수산시장에 있는 엄마 가게로 옵니다. 그곳에는 엄마와 할아버지, 삼촌이 성을 내며 싸우고 있었죠. 결국 분노한 엄마는 '그래. 아파트 가져가세요!'라고 외치고는 그들을 몰아냅니다. 뒤늦게 아빠가 무슨 일이냐며 묻자, 엄마는 울분에 찬 채로 무책임하게 지내왔던 그들이 아파트까지 가져가려고 안달이라며, 아파트 주고 연 끊자고 말했다고 답합니다.

 

 한편, 명은은 반장선거에 출마합니다. 그녀는 이전 후보들은 무수히 많은 공수표만 던지고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자신은 단 한 가지 정책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제시합니다. 그것은 '비밀 편지함'입니다. 소망하는 비밀을 편지함에 넣으면 반장과 담임 선생님이 상의해서 이뤄내는 제도. 명은은 이와 같은 공약을 통해 반장이 되었고, 내뱉은 말을 차근차근 지키기 시작합니다. 생일 챙기기, 소외된 아이 챙기기, 반에 작은 도서관 만들기, 영어 펜팔 친구 만들기 등 여러 약속을 지켜나갑니다. 그러나 그 편지들은 반 아이들이 넣은 것이 아니라, 명은이 직접 작성해 넣은 편지들이었죠.

 

 학기 중, 환경을 주제로 한 글짓기 경연 대회가 개최됩니다. 명은은 서점에 가 환경오염 관련 서적을 쭉 훑어보고, 분리수거 없이 쓰레기를 막 버리는 엄마를 꾸중하기도 합니다. 몸소 쓰레기봉투를 사 와 분리수거까지 실천하는 정성까지 보인 명은은 글짓기 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합니다. 기쁜 마음에 엄마 가게로 달려가 상장을 보여주지만, 부모님은 냉담한 반응만 보이며 최우수상이 아니냐는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축하한다는 의미로 저녁에 고깃집에 가기로 하는데요. 그곳에서 즐겁게 고기를 구워 먹던 명은은 그곳에 반 친구 어머니가 온 것을 확인합니다. 그녀는 단번에 명은을 알아차리고 인사를 건넸지만, 명은은 부끄러웠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죠.

 

 다음날, 학교에서 반친구가 명은에게 다가와 어제 어머니가 겪은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했던 부모님에 관한 거짓말을 폭로하죠. 그러나 태연하게 명은은 친구 어머니가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다며 오리발을 내미는데요. 자신의 비밀이 밝혀질 위기에 처한 명은은 어떻게 이 일을 극복할까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잔잔한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 '불우한 가정의 삶을 아이의 시선으로 담은 작품을 좋아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잔잔한 작품을 싫어하는 분', '입체적인 성격의 등장인물이 주로 나오는 작품을 싫어하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게 된 계기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비밀의 언덕

 

 

 어린 시절의 아이들에겐 학교는 그들이 만나는 사회의 전부입니다. 좁은 사회 속의 전부인 친구들은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관계들이죠.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외면당한다는 것은 곧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외모가 못 생겼냐느니, 공부를 못한다느니, 집이 못 산다느니... 등 어느 하나 트집 잡을 것이 있으면 놀림감이 되고는 합니다.

 

 명은도 그런 결점을 가지고 있는 아이입니다. 아버지는 한량에, 어머니는 수산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부끄러운 사람. 불우이웃에게 돈 한 푼 쓰지 않고, 환경은 신경도 쓰지 않으며, 자신을 신경 써주지 않는 배울 것 없는 부모. 명은은 남들처럼 양복 입은 아빠, 가정 주부인 엄마가 아니기에 부끄럽고, 창피하고, 놀림당할 것이 두렵습니다. 때문에 호구 조사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부모라는 존재, 친구들에게서의 놀림, 둘 다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게 됩니다. 부모님은 언제 학교에 올 수 있냐는 담임의 물음에는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 병간호 때문에 오시지 못한다고 말씀드리고, 고깃집에서 부모님을 봤다는 친구에게는 조작한 증거 사진을 내밀며 아빠가 회사원이라고 거짓말하죠.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은 완벽한 자신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거짓에 거짓이 쌓여, 남들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산처럼 쌓여 결국 비밀의 언덕이 만들어집니다.

 

솔직함이란

 

 

 완벽을 추구하고, 결점이 있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성격의 명은은 글짓기 대회를 나갑니다. 환경, 평화를 주제로 한 서로 다른 글짓기 대회에 도전하게 되죠. 그녀는 꼼꼼한 자료 조사와 훌륭한 글솜씨로 당당히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을 성공합니다. 그러나 실적은 번번이 우수상을 수상하는데 그치죠.

 

 환경 글짓기에서는 6학년에게 밀려 최우수상을 받지 못했지만, 평화 글짓기에서는 5학년에게 상을 뺏겼습니다. 최우수상을 가져간 사람은 바로 명은의 반으로 전학 온 친구, 혜진. 평화라는 주제를 심도 깊게 다루기 위해 명은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통일전망대까지 찾아가 현장답사까지 했었기에, 자신이 혜진에게 밀린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혜진이 쓴 글은 남북과의 평화, 국가 간의 평화가 아닌 자신과 사회와의 사투를 그린 평화였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고, 어머니는 향락가에서 일하는 것을 손짓하는 사회와 치열한 사투를 펼치고 있는 그들의 사투를 그린 글은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했습니다.

 

 명은은 혜진에게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시간이 걸렸냐고 묻습니다. 이에 그들은 1시간쯤 걸려서 글을 작성했다고 답하죠. 자료 조사를 위해 며칠 동안 고생하는 명은과는 대조적인 작업시간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글을 작성할 수 있냐고 묻죠. 그들의 비법은 다름 아닌 '솔직함'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경험을 그대로 글의 주제에 맞게 녹이면, 독자로 하여금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글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죠.

 

 이는 명은에게 충격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은 글짓기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을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완벽해 보이는 글을 위해 꼼꼼한 자료 조사와 존재하지도 않는 가훈을 만들어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5월이 되고,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을 주제로 한 지역 글짓기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명은과 혜진에게 참가를 제안하게 되죠. 명은은 행복한 가족을 주제로, 자신의 가족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글로 적어 제출합니다. 그러나, 선생님 책상에 놓인 혜진의 솔직한 글을 보았을 때, 글의 힘 자체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결국 명은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글을 몰래 시청에 제출하게 됩니다. 선생님에게는 아프다고 말씀드렸지만, 실제로는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형식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가족 구성원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작성한 글이었죠. 결과는 대상. 그녀의 글이 심사위원들의 심금을 울린 것입니다.

 

'나'와 무관한 구속들

 

 

 명은이 시청에 제출한 글은 남들에게 공개될 예정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낭독하는 것은 기본이고, 지역 신문사에 게재될 예정이었죠. 그것은 명은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적은 글은 지금껏 만들어 왔던 완벽한 가면을 벗겨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가정주부를 하는, 할머니 병간호를 하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할머니도 이미 이 세상을 달리하신 분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거창한 가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족끼리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명은, 본인도 가족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남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닌 이유는 겉보기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완벽에 가까운 사람으로 성형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 자기 자신만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닌, 가족의 수준을 보고 명은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지 않고, 부끄럽기만 한 가족은 명은에게 족쇄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영화의 엔딩은 그 점을 지적합니다. 학년이 바뀌고, 6학년으로 올라간 명은은 이번에도 호구조사를 겪게 되죠.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닌, 실제 부모님들의 직업을 적어 제출하려고 한 명은은 선생님의 말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족 관계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문구를 적어서 제출하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자신을 다른 요소가 아닌, 명은이라는 인물에 집중해 이해하고, 파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죠.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명은'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닌, 성실하고, 사랑스러운 진짜 '명은'이 사회로 들어서는 순간입니다.

 


 이 영화를 다룬 칼럼들을 보았을 때, 한 아이의 성장물로 다루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진정한 성장이라면 자신의 가족을 담담하게라도 남들에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지만, 명은은 끝까지 그러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과 같은 요소로 자신의 평가가 절하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여전하며, 오히려 담임이 바뀌어 '명은' 본인만 고려해 주는 세상이 다가온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성장물이라는 얘기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족쇄를 풀어줄 열쇠, 비밀"

 

영화 추천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정각에 업로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