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추천하는 영화

[영화 추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역작 (A Separation, 2011)

무비서포터 2023. 7. 26. 00:00

안녕하세요. 무비서포터입니다.

 

 오늘 들고 온 영화는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걸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입니다.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칸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감독임을 입증하고 있죠. 최근 작품 '어떤 영웅'에서 학생의 다큐멘터리 속 아이디어를 가져와 영화로 제작한 것으로 법정 처벌을 받은 소란으로 감독으로서의 입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과거의 영광이 거저 쥐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범법자 하나 없는 군상극을 빠른 템포로, 현란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완벽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도덕적 딜레마를 집중적으로 다룬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영화 소개 (스포일러 x)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예고편

 

"부인은 신실한 분이시죠. 저 때문에 이 사단이 벌어졌다고 코란에 맹세해주세요"

- 극 중 나데르의 대사

 

장르 : 드라마

감독 : 아스가르 파르하디

주연 : 레이라 하타미(씨민), 페이만 모아디(나데르), 사리나 파르하디(테르메), 사레 바얏(라지에)

상영 시간 : 124분

 

 이야기는 재판장에서 이혼 소송을 진행하는 '씨민'과 '나데르'를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둘이 이혼하고 싶은 이유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서인데, 아내인 씨민은 자녀 교육을 위해 유럽으로 이민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데르는 치매 걸린 아버지를 두고 떠나갈 수 없다며 반대합니다. 답을 정할 수 없는 문제에 둘의 감정만 격해지자, 판사는 양쪽 모두 동의하면 이혼을 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이혼에는 동의하지만, 아이를 국외로 보내는 문제에는 동의하지 않는 나데르. 결국 둘은 끝장을 보지 못한 채로 재판장에서 나가게 됩니다.

 

 단단히 화난 씨민은 외가로 떠나기로 합니다. 그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용 캐리어에 짐을 담기 시작하죠. 그 와중에 나데르는 도우미에게 치매 걸린 아버지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설명하며 정신이 없는 상황. 씨민은 숨겨진 돈을 챙기며 딸 '테르메'의 눈앞에서 집을 떠나갑니다.

 

 도우미로 온 '라지에'는 형편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임신한 상태로, 딸을 데리고 다니며 도우미를 하는 처지이죠. 그래도 도우미로서, 각종 집안일을 하며 정신없는 와중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는 옷에 오줌을 싸고 맙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여자인 라지에는 화장실에 들어가 그의 몸을 씻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화장실에 혼자 보내드리고, 알아서 씻길 기다리죠.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할아버지는 대답 없이 잠잠했고, 할아버지가 걱정된 라지에는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어 그를 확인합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정신을 잃었던 것. 난감한 상황에 라지에는 '종교 도움 센터'에 연락을 합니다. 자신의 가족도 아닌, 나체의 남자를 만지고, 씻기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죠. 만약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남자를 만지는 경우에는 죄가 아니라는 답변을 듣자, 라지에는 안심하고 할아버지를 일으키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이와 같은 생활을 지내던 나데르의 가족은 어느 날 집에 왔을 때, 도우미가 자리를 비운 것을 확인합니다. 게다가 파드메는 할아버지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광경을 목격하기도 하죠. 나데르는 곧장 달려와 할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합니다. 산소호흡기는 떨어졌지만, 생사에는 지장이 없는 상황. 나데르는 한숨 돌리며 할아버지를 침대에 바르게 올려놓습니다. 잠시 후, 자리를 비웠던 파드메가 돌아오고, 나데르는 그녀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간병인으로서 일분일초도 빠짐없이 간병을 해야 할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 점. 게다가 자신이 비상금을 보관하는 장소에 돈이 사라진 점을 들어 그녀를 해고합니다.

 

 파드메는 자신이 할아버지 간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의 비상금은 건드린 적이 없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데르의 비상금은 사실, 씨민이 집을 나가면서 챙겨갔기 때문이었죠. 그 사실을 알리가 없는 나데르는 파드메가 훔쳐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집에 들어오려는 파드메를 집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러나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하며 집에서 나가지 않자, 나데르는 파드메를 '툭' 밀쳐버리고, 현관문을 닫아버리죠. 그러나 잠시 뒤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은 나데르는 문을 살짝 열어 파드메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계단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죠. 나데르의 눈은 당황해서 흔들리지만, 별말 없이 문을 닫습니다.

 

 나데르는 나중에 살인죄로 법정에 불려가게 됩니다. 파드메를 밀어 잉태하고 있던 아이를 죽인 죄로 말이죠. 법정은 개판 오 분 전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나데르가 파드메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냐 없었냐부터, 파드메의 아이가 사망한 시점이 나데르가 민 순간이 맞는가, 그리고 자신은 툭 쳤는데, 어떻게 계단 아래까지 굴러 떨어질 수 있었냐 등 유죄를 가릴 수 있는 요소들이 법정에서 격렬하게 논의되죠. 과연 이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내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악인 없는 군상극을 보고 싶은 분', '도덕적 딜레마를 좋아하는 분', '긴장이 끊이질 않는 작품을 좋아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 '정답없는 문제를 골치 아파하는 분', '이슬람 문화에 거부감을 가진 분', '스트레스 주는 영화를 싫어하는 분'

 

여기까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한 스포일러 없는 영화 소개입니다.

 

아래로 내리시면, 제가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게 된 계기를 스포일러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란에서 이슬람교의 위치

 

 

 현재 19억 인구의 신앙인 이슬람교는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이 매우 강한 종교입니다. 그 힘이 워낙 강력하여 이란의 경우에는 공화정을 채택한 국가이지만, 종교 지도자가 시시건건 정치에 개입하고 있죠. 그리고 종교의 영향력이 워낙 강력해서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대표적으로 여자는 히잡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거나, 라마단 기간에는 낮에 금식을 해야 한다거나 여러 방면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영향으로는 행복한 내세를 약속하며, 자살 테러를 유도하기도 하죠.

 

 그러나 대한민국에 사는 저희는 이란에서 이슬람교가 얼마나 위상이 높은지 감을 잡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비주류 종교이기에 접할 일이 적다는 것이 원인이죠. 뉴스에서 들려오는 큼직한 사건들을 들을 때는 '저긴 왜 저럴까?'라는 물음과 함께, 감을 잡지 못한 채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란의 생활상을 알려주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제가 처음에 영화를 보았을 때 가장 충격받았던 내용은 '종교 문의 전화'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코란에 위배되는 행동인지 잘 모를 때, 간편하게 연락해서 검증받는 시스템이었죠. 그런 시스템이 기독교에서 제공되고 있다는 소식은 듣긴 했지만, 이란 사회에서는 국가적으로 종교 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작은 행동들이 종교에 의해 제어되고,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슬람교의 위상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코란에 맹세를 부탁한다는 나데르의 말에 라지에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단순한 거짓말 하나면, 돈을 받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종교의 천벌이 두려워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 한 사람의 삶이 종교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은 놀라운 장면이었습니다.

 

관객에게 재판봉을 쥐어주며 판결을 묻다

 

 

 영화의 오프닝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씨민과 나데르가 화면 정면을 응시하며,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상황. 마치 관객이 재판장이 되어 판결을 내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심지어 둘의 주장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습니다. 딸의 교육을 중요시 여길 것인지, 치매 걸린 아버지를 보살피는 걸 중요시 여길 것인지가 판단의 관건이 되는 상황이죠. 영화를 보다 보면 계단을 밀쳐서 뱃속의 아이가 사망했는지 갑론을박을 다투는 모습, 아빠가 감옥 가는 것을 두려워해서 거짓 증언을 하는 파드메의 모습 등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기 힘든 상황이 무수히 많이 등장합니다. 오프닝은 전반적으로 영화가 어떤 것을 관객에게 제시할지, 그리고 관객에게 재판봉을 쥐어주며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죠.

 

 사실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는 것이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전매특허이기도 합니다. '세일즈맨'과 '어떤 영웅'에서도 밀도 높은 호흡으로, 끝없이 딜레마를 제시하며 관객에게 판결을 물었죠. 다만 두 영화와 비교하여 제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인물들의 군상극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딜레마를 제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악인도 사실 사람이다' 혹은 '악인에게도 좋은 면모가 있다'와 같은 방식으로 딜레마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세일즈맨'과 '어떤 영웅'에서는 각자 '아내를 폭행한 범인'과 '빚을 갚지 못해 복역 중인 인물'이 등장합니다. 딜레마를 부여하는 방식도 각각 '한 가정의 아버지'와 '돈을 잃어버린 분에게 되돌려 줌'으로 긍정적인 면을 제시하죠. '어떤 영웅'에서는 조금 더 복잡한 방식으로 딜레마를 부여하기는 하지만,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범죄자의 긍정적인 면'을 제시하면서 딜레마를 부여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안타까운 해프닝에 말려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라지에는 망나니 남편과 딸을 부양하기 위해 임신한 몸이지만 도우미를 합니다. 자신의 몸도 버거운 상황에서 잠시 신경 쓰지 못한 상황에, 치매 걸린 노인이 집 밖으로 나가 길거리로 향합니다. 그를 구하기 위해 무리한 라지에는 결국 차에 부딪혀 아이를 유산하게 되었죠. 이후 유산한 라지에는 남편에게 구박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나데르가 자신을 현관 밖으로 밀쳤을 때,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유산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죠. 분노한 라지에 남편은 곧바로 살인죄로 나데르를 고소하게 되고, 재판이 열리게 되고, 이 재판에서 나데르, 파드메, 라지에 전부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결국 극적으로 나데르가 라지에에게 돈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게 되었지만, 코란에 맹세해 달라는 나데르의 요청에 라지에는 무너지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타까운 상황의 연속이며, 자신의 안녕을 위해 거짓말을 한 소시민들. 그 누구도 죄를 묻기 힘든 상황을 엔딩까지 파드메가 씨민에게 가야 할지, 나데르에게 가야 할지 관객에게 판결해 달라며 재판봉을 내미는 훌륭한 작품이죠. 감독의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 시대 최고의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는 작품일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24분에 걸쳐 도출하는 정답 없는 수식"

 

영화 추천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정각에 업로드됩니다.